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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뮤익의 극사실주의 조각에 나타난
시각적 과잉과 심리적 반응
박준석(N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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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론 뮤익(Ron Mueck)
◦전시기간 :2025.04.11. ~ 2025. 07. 13.
◦전시장소 : 서울관 지하 1층, 5, 6 전시실

 국립현대미술관과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2025년 4월 11일부터 7월 13일까지 한국 최초로 호주 출신 작가 론 뮤익의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한다.
 1958년 멜버른에서 태어나 1986년부터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론 뮤익은 보편적인 주제를 담은 작품 세계를 구축하여 현대 인물 조각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정의했다. 그의 작품은 신비로우면서도 극도로 생생하여 현실에 강렬한 존재감을 부여하며, 우리가 몸과 시간, 존재와의 관계를 직시하게 유도한다.
 뮤익은 기억, 몽상, 일상적 경험을 바탕으로 깊은 연민을 담아 대상을 놀라운 크기로 표현한다. 30년에 걸쳐 완성된 그의 작품은 총 48점으로, 극도의 기술적 완성도와 정교한 예술적 표현이 조화를 이룬다. 전통적인 접근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재료를 활용해 정밀하게 조각된 작품들은 크기의 세심한 조정과 함께 해부학적 디테일, 머리카락, 옷차림까지 정교하게 묘사할 뿐 아니라 인간의 감정 또한 생생하게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는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소장품인 기념비적 설치작품 〈매스〉(2016–2017)를 중심으로, 작가의 초기 대표작인 〈젊은 연인〉(2013)과 〈쇼핑하는 여인〉(2013) 같은 독립적이거나 한 쌍으로 이루어진 인물상, 그리고 초기 조각의 요소를 재해석해 관객과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을 시도하는 최신 작업을 소개한다.
 프랑스의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 고티에 드블롱드의 영화 두 편과 사진 연작도 포함되어 있다. 갤러리 6에서는 드블롱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론 뮤익의 스튜디오와 작업 환경을 엿볼 기회를 제공한다. 25년 이상 뮤익의 작업 과정을 기록해 온 드블롱드의 작업은, 조각이 스스로 드러나게 두고 본인은 배경으로 머물기를 선호하는 예술가를 담은 희귀하고 친밀한 기록이다.
 이번 전시는 론 뮤익이 조각이라는 매체의 연구와 장르적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것은 물론, 그의 예술적 여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다. 현대 조각의 변화와 흐름을 이끌며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철학적 사유를 일깨워 준 그의 조각 여정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

국립현대미술관(https://www.mmca.go.kr/)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론 뮤익(Ron Mueck)의 개인전이 진행 중이다. ‘론 뮤익’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알지 못하더라도, 그의 작품을 익숙하게 여기는 관람자는 적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작품을 사진으로 접한 이들은 이를 단순히 현실의 인물과 동일하게 만든 조각이라 생각 할 수 있겠으나, 실제 작품을 마주하면 ‘하이퍼 리얼리즘’을 넘어선 여러 사유의 확장을 경험하게 된다. 다양한 크기, 작품 속 인물이 바라보는 시점,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등 작가의 다양한 시도와 관람자의 경험, 상상이 맞물린다. 론 뮤익에 관한 여러 학술적 연구는 해당 작품들을 삶과 죽음의 문제로 해석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전시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 론 뮤익의 대표적 작업 몇 가지를 소개하며, 해당 작품이 제기하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에 관해 언급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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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n Mueck, 〈Mask Ⅱ〉, 77*118*85cm, 2002
 《론 뮤익》에서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는 〈마스크 Ⅱ(Mask Ⅱ)〉(2002)는 작가의 자화상이다. 받침대에 누워 잠을 자는 듯한 거대한 얼굴 형상은 건드리면 눈이라도 뜰 듯 실제와 같은 긴장감을 준다. 누군가는 마치 코 고는 소리, 잠꼬대와 같은 환청이 들린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작품은 모든 각도에서 관람이 가능하고, 뒷부분은 정면의 사실적인 얼굴 묘사와 상반된, 텅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의 제목과 뒤쪽의 공간은 ‘이건 진짜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듯하며, 이를 통해 사실적인 것과 사실은 다름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작가는 ‘진짜 같음’을 표방하는 하이퍼 리얼리즘 조각의 평면적 해석을 벗어나, 사실과 재현, 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거리 두기를 유도하며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읽기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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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n Mueck, 〈In Bed〉, 162*650*395cm, 2005
 〈침대에서(In Bed)〉(2005)는 압도적인 크기로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크기와 생동감 있는 묘사에, 관람자는 침대에 누워있는 이 거대한 인물상 주변을 맴돌며 구석구석 관찰하게 된다. 베개에 기대 턱에 손을 얹은 여성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관람자는 보이지 않는 듯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이 여성이 다른 것에 집중하여 나(관람자)의 존재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 있고, 나라는 존재가 저 여성에게 신경 쓸 필요조차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전자의 경우라면, 저 여성이 어떤 생각에 잠겨 있는지, 걱정이 있는지, 잠이 오지 않는 것인지와 같은 생각과 함께 여성이 현재 어떤 감정 상태인지가 궁금해질 것이다. 한편, ‘관람자인 나는 저 존재에게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무언가인가.’하는 생각은 ‘혹시 저 여성에게 나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아닐까.’하는 궁금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어느 쪽으로 생각이 닿든 간에 이러한 해석이 흥미로운 이유는 관람자가 해당 작품을 타‘인’처럼 여기게 된다는 점이다.
 작품의 거대한 크기에 시선을 사로잡혀 이를 세심하게 관찰하다 보면 여성의 시선과 표정, 침대 등의 1차적 시각 정보를 지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지난 경험을 작품에 대입하게 된다. 이후, 마치 사물이 아닌 타인을 대하듯 대상(작품)의 감정을 읽고 나와의 관계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관람자가 나름의 고민을 마치고 시선을 돌릴 때, 눈앞의 여성이 사실은 전시실 가운데 놓인 작품일 뿐임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 존재 혹은 물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인간이 아닌 무언가의 생각과 감정, 그것과 나의 관계를 고민하는 낯선 경험은 관람자에게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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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n Mueck, 〈Dark Place〉, 140*90*75cm, 2018
 《론 뮤익》의 두 번째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어두운 장소(Dark Place)〉(2018)를 보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의 행렬을 보게 된다. 작품은 어두운 공간 속 한 남성의 거대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거나 시선을 피하는 여타의 작품들과 달리 관람자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사실 구태여 줄을 서지 않더라도 작품은 먼 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긴 시간을 들여 그(작품)의 앞에 다다른 순간. 빨려 들어갈 듯한 어둠 앞에 일순간 주변의 소음이 잦아들고 거대한 남성과 눈을 맞추는 숨 막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거대한 인물상의 맹렬한 시선이 자아내는 숭고 혹은 두려움, 관람자인 내가 ‘보여지는’ 존재로 역전되어 버리는 상황에서 우리는 인식의 대상,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고민하게 된다.
Gautier Deblonde, 〈Still Life : Ron Mueck at Work〉, HD Film, 48mins, 2013
 전시는 론 뮤익의 대표적인 작업을 살펴본 후 작가의 작업실과 작품의 제작 과정을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고티에 드블롱드(Gautier Deblonde) 감독은 론 뮤익과 오랜 시간 함께하며 그의 스튜디오와 작업 과정을 기록하였다. 〈스틸 라이프 : 작업하는 론 뮤익(Still Life : Ron Mueck at Work)〉(2013)과 〈치킨/맨(Chicken/Man)〉(2019-2025)을 통해 관람자는 작가가 어떤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 작품을 제작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론 뮤익은 심봉에 만든 작업물을 계속해서 돌려보며 다시 흙을 붙이고, 작은 에스키스를 만들어 완성된 작업물과 함께 놓아둔다. 또한, 여인의 품에 아기를 붙이는 장면, 비닐봉지를 쥐여 주고 바라보는 장면 등 작가는 자신이 생각한 이미지와 실제 작품이 일치하는지 계속해서 확인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상은 배경 음악도 없이 작품활동에 몰두한 작가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하며, 관람자는 작가의 바로 옆에서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숨죽이고 지켜보듯 그의 행동에 집중하게 된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론 뮤익》 전시는 관람자로 하여금, 도대체 이 사람들(작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지는 경험, 반면 이것이 깨지지 않게 조심해야겠다거나 쓰러질 것 같다는 느낌. 즉, 작품이 인간처럼 느껴지는 순간과 인간이 아님을 인지하게 되는 순간에서 오는 낯선 생각과 다양한 감정을 남긴다. 극사실주의의 효과는 단순히 현실감 있는 묘사가 아닌, 관람자가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인지하게 되는 순간에 발생하는 부조화에서 나타난다. 작가는 생동감 있고 세밀한 묘사로 관람자를 현혹하나, 빈 공간과 일부 과장된 부분, 미묘하게 잘못된 신체 비율 등 오래 시선을 둘수록 실제와 재현의 간극은 커지게 된다. 뮤익의 작품에서 몰입의 목적은 몰입을 깨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