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불꽃처럼 타오르고 진달래가 숨 쉬고 있습니다.
김시종 시 「봄」 중에서
진달래가 뱉어낸 숨은 바람이 되었다. 바람은 바다의 깊은 한숨과 함께 중천을 흔든다. 그때의 바람은 여기로 이어진다. 횃불을 팽팽 치대며 뒤흔드는 것은 바람이다. 어둠을 솟아오르게 했던 횃불의 열기는 대숲을 흔들었다. 대숲에 들어가 죽창을 깎은 것은 민중이었다. 응축된 최고조의 열망은 거대한 빛의 혁명으로 이어져 왔다.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 동학의 횃불과 거리의 응원봉, 한라산과 무등산, 지리산과 백두산 사이에 얽혀있는 의식과 감정은 단단하게 응축되어 있다. 응축된 의식과 감정은 과거와 현재를, 이곳과 저곳을 연결한다. 《2025 4·3미술제》는 항쟁의 역사가 단지 특정 지역이나 집단의 역사가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역사임을 드러낸다.
우리는 제2의 4·3, 제2의 5.18이 반복되는 현실을 지켜보며, 역사는 단지 과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중요한 메시지와 가치를 전달하고 있음을 직시했다. 역사는 반복되고 그 속에 담긴 아픔과 고통이 새로운 세대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따라서 역사를 다루는 4·3미술은 ‘지금 여기’를 끊임없이 드러내는 이야기며, 감정의 흐름을 잇는 작업이다.
예술은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억압된 기억을 되살리고, 감정의 흐름을 전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또한, 우리가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관한 중요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작가들은 예술로 과거의 저항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질문 앞에서 우리는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 과거와 현재를 잇는 예술적 실천은 무엇인지, 어떻게 역사를 기억하고 현재와 연결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고통과 저항을 단순히 과거의 역사로 남기지 않고, 오늘날 우리 사회에 여전히 의미 있는 이야기로 전환하는 작업이다. 결국 민중의 고통과 저항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이어가려는 예술적 노력이다. 과거의 아픔을 되새기며 현재를 반성하고, 더 나은 사회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전시가 4·3미술제다. “타오른 바람, 이어 든 빛”은 역사의 불꽃이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으며, 우리는 그 빛 속에서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음을 뜻한다.
《2025 4·3미술제》가 4·3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고, 4·3의 정신을 현재에 어떻게 반영해서 이어갈지 모색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들의 얼굴에 쌓였던 눈과 지금 내 손에 묻은 눈이 같은 것이 아니란 법이 없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