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역사를 어디까지 새롭게 바라보고 표현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 앞에 와엘 샤키는 회화부터 조각, 설치, 음악, 퍼포먼스, 영화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총체적 작업을 통해 답한다. 첫 번째 출품작 < 러브 스토리 >(2024)는 안동의 전통 가옥을 지나며 판소리 창을 하는 여인의 모습과 폐전자제품들 사이에서 전통 사자 탈춤을 추는 모습을 각 스크린을 통해 보여준다. < 러브 스토리 >(2024)를 제작하기에 앞서 와엘 샤키는 언어의 통제권을 완벽히 잃은 상태에서 자신이 역사의 해석가로서 어떠한 영향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가 한국의 구전 설화에서 발견한 핵심 주제는 도덕이나 정의, 불공정과 같은 것이다. 와엘 샤키가 본 사랑이란 남과 여의 사랑 차원보다는 누군가를 구해주고, 때로는 멀어지지만 함께 있고 싶어하는, 가시적으로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것이다.1)한국 전통 설화 속 타문화를 관통하는 본질적 주제를 발견하고 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앞서 자신을 해석가라 지칭했던 작가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
두 번째 영상관에 설치된 <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 I >(2012)는 2000년도 당시 작가가 지역을 방문하여 본 경험과 이집트 소설가인 모하마드 무스타갑(Mohamed Mustagab 1938-2005)의 우화인 『위대한 자비르(The Great Jabir)』를 결합하여 ‘인간의 맹신적인 믿음이 전체 사회를 어떻게 지배하게 되는가’에 대해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2) 영상은 이집트 전통의상을 입은 어린 아이들이 지역의 지도자를 신봉하던 고대 이집트인들의 삶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들의 대화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주 이동수단으로 들여온 낙타를 없애고 노새를 들여오라는 한 지도자의 유언에 따라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화면은 끊임없이 바닥을 파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한 어린 아이를 비추는데, 이는 땅 속에 있는 파라오의 보물, 즉 물질적인 것을 찾기 위해 형이상학적인 점술가와 신비, 영적인 것을 신봉하는 이집트인의 풍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극 중 지역의 고대 풍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어린 연기자들의 모습에서 재미있는 것은 표정 연기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다만 더빙된 성인 남성의 목소리에 맞춰 대사를 읊고 있는 듯 보이는데, 그들은 작가로부터 내용에 대한 인지 없이 섭외된 연기자들이다. 와엘 샤키는 관람자들이 극중 연기자들의 드라마틱한 표정 연기에 집중하기를 원치 않는다.3)
이처럼 역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체하는 와엘 샤키만의 세밀한 표현 방식은 세 번째 출품작 < 나는 새로운 신전의 찬가 >(2023)에서 더욱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 영상에서는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장소인 폼페이를 배경으로 초창기 기독교의 시대적 배경 속에 공존한 다양한 신화와 설화에 대한 인물 묘사를 기괴한 세라믹 마스크 퍼포먼스와 음악을 통해 보여준다. 와엘 샤키는 이집트 신화가 그리스 로마 신화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이집트 신화의 ‘이오’라는 인물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시스’라는 새로운 인물로 변화한 점을 발견했고 이에 대한 내용들을 작업 속 주된 주제로 설정했다. 이를 노래로 엮어 세라믹 마스크를 착용한 퍼포머들의 춤과 연기로 드러내는데, 이때 퍼포머들이 착용하고 있는 마스크의 주원료 세라믹은 그리스 제국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고, 사람이 흙에서 시작해 흙으로 돌아간다는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 문화와도 연관이 깊다. 와엘 샤키는 이 작업에서 역시 극중 퍼포머들의 표정 연기에 주목하지 않도록 제각기 다른 마스크를 제작해 착용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