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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ME
송하니(MUSEUM 1 선임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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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캐와 부캐가 공존하고, 자아가 ‘몇 개인지’ 이번 생은 ‘n 번째인지’ 이야기 나누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더욱 골똘히 ‘나’자신에 관한 의문을 갖고 있다.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다시 말해 소위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에 관해 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며 무리를 지어 살아가도록 진화했고 그렇지 못한 경우 무리에서 제외되었다. 수백만 년 전부터 이어온 인간 고유의 습성은 우리를 타인의 시선 앞에서 당연히 자유로울 수 없게 만들었고, 누군가에게 받은 인정을 자양분 삼아 성장하고 발전하게끔 길들여졌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좋아하는 것’을 찾기보다 ‘해야만 하는 것’을 더욱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교육받아 왔다. 현대사회의 시스템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시켜 주지만 새로운 종류의 의존을 낳았다. 인간은 더욱 독립적, 자립적, 비판적이 되었으며, 동시에 더 고립되고 고독해지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3명의 작가가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느낀 고민과 갈등에 대해 조명하고, 그들이 고찰하는 과정을 관람객이 함께 좇으며 마주하게 될 ‘본질적인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나’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나에 관한 물음은 평생에 걸쳐 통과하는 터널일 것이다. 작가들은 끊임없이 ‘자아’라는 대상을 고민과 갈등 그리고 사회적 문제 현상에 대입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때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들여다보고 이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의 대립을 오가는 과정은 작가 본인의 주체성을 전제로 한다. 그리한 후 각자 직면한 문제와 그에 대한 목소리를 시각적 결과물로 치환해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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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림, < 조각 블라인드 >, 2023
권혜림은 자신을 둘러싼 외부 환경 요소를 제외하고 스스로에게 향한 감정에 집중한다. 작가는 이러한 순간들을 수집하며 감정을 해체하고 그것을 다시 재배열하는 과정을 가진다. 이 행위를 통해 자신이 느낀 감정을 한 번 더 상기시키며 보다 폭넓게 스스로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또한 작가는 도자기에 패턴을 그리는데 그 패턴은 어딘가 흐트러지고 불안정한 형태를 띤다. 이는 작가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정제하여 자신의 감정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타의성과 주체성이 가진 양가적 요소들을 작품 안에 복합적으로 적용하여 자아를 인지하는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은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고자 하는 여정의 일부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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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영, < 심해너머의 세상 >, 2022
윤지영은 공동체의 틀 속에서 배척당하지 않기 위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위장하며 생활하였다. 이러한 작가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반영하고 그 감정들을 나타내기 위하여 다양한 오브제들의 표면에 질감으로 표현하였다. 불안과 우울, 환멸과 무너짐, 고통의 감정들로 표현된 조각 작품들은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어와 공격 수단을 상징하는 뿔의 형상으로도 나타내어 삶을 대변하고 있다. 작품을 통해 윤지영은 즐겁고 행복하면서도 장난스럽게 자신을 위장하며 살아도 정체성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버거운 위장의 기술이 지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지만 또 결국은 이겨내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삶에 대한 위로의 목적을 동시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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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 야마자키, < YAMASUKI YAMAZAKI >, Single channel video, 02:23, 2013
시시 야마자키는 ‘시시걸’이라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통하여 현실에서는 실제로 분출하기 어려운 내면의 욕망과 욕구를 표현한다. 작가는 로토스코프 방식을 활용하여 작업하는데 이는 촬영한 동영상의 이미지를 한 프레임씩 반복적으로 베껴 그리는 기법으로 현실에서 충족하지 못한 내면의 욕구를 투영하는데 적합하다. 영상 속 캐릭터는 다소 과장된 움직임과 연출로 자율성을 강조하는 듯하지만 작가는 단순히 보여지는 것에만 치중하지 않고 인간 내면의 세밀한 감정을 표출하는 자아성찰의 도구로 활용한다. 시시 야마자키는 이렇듯 작품 속 또 다른 그녀 등장시켜 정체성의 회복을 실현함과 동시에 실존하는 ‘나’와 캐릭터 사이의 간극을 극복하고자 한다.
 
우리가 삶 속에서 경험하는 불안감은 ‘스스로 느낀 것’이 아니라 대부분 주변으로부터 비롯된다. 타인보다 늦어서, 다른 사람만큼 못하는 것 같아서 등과 같이 모든 중심과 초점이 타인에게 있으니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비교와 자책, 자극적인 소재들과 자본으로 물들어진 것들은 삶의 본질을 잊게 만든다. 이때 우리는 앞선 세 명의 작가가 스스로를 돌아보며 본질에 한걸음 닿아가는 과정에 주목하길 바란다. 삶의 본질은 ‘가치’와 ‘의미’에 있으며, 인생을 마주하는 ‘스스로의 생각’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지, 내가 하는 행동과 지금 하는 일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기성화 된 사회와 타인의 시선에 부응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고유한 본질을 찾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