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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주 작가의 회화 실험
 - 권민주 개인展. 헤테로토피아:일상 -
박순영(문화예술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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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 >, 2021
권민주 작가는 회화의 영역에서 여러 형식과 방법을 다양하게 실험하고 시도하는 신진 예술가이다. 작가는 추상적인 방식의 그리기와 각각의 그림들을 사물로 활용한 설치를 병행하며, 이를 통해 본인이 경험한 유의미한 장소를 관객에게 구체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그녀는 자신이 재현한 장소를 관객이 관조하거나 감상하기보다 실제로 체험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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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회화의 동향을 보면, 더이상 재현의 관점을 기준으로 구상과 추상을 나누지 않는다. 예를 들어 느낌이 잘 재현되었는데 형태가 일그러졌다고 이를 추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어떤 대상이나 이야기를 잘 묘사하거나 구현하는 재현의 방식과, 순수한 형식이나 화가의 몸짓 또는 물성을 추구하는 추상의 방식으로 구분하는 시기는 지났다. 현대 회화는 화폭에서만 실재하는 이미지를 창조하거나 회화 자체를 부피와 질량을 지닌 하나의 사물이나 조형 요소로 다루면서 공간에 연출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다시 말해 회화의 '평면성'을 전제로 화폭 내에서 이미지를 표현하는 방식과 '입체성'을 전제로 공간 내에서 캔버스를 하나의 매체로 다루는 방식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이 둘을 혼용 하는 작가들의 다양한 표현이 등장하는데, 권민주 작가는 이러한 성향의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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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 《헤테로토피아_일상》은 작가로서 큰 행보를 내딛는 첫 번째 개인전이다. 전시 공간에는 < 한시간의 길_2021 > 작품이 설치된다. 작가가 전시를 준비하면서 반 년 동안 오가던 길이 이번 전시에서 재현되는 특정한 장소이자. 그녀의 '헤테로토피아'이다. 작가는 길에서 획득한 기억과 기분을 그림으로 그리고, 이렇게 그려진 그림들을 오브제로 사용하여 전시공간에 연출한다. 이를 통해 관객이 전시장, 즉 작품 속에서 자신만의 헤테로토피아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이며 전시의 주제이다.
 
'헤테로토피아'는 프랑스철학자 미셸푸코가 고안한 개념으로 관념에서만 존재하는 유토피아가 아닌, 실제 우리 몸으로 살아가는 구체적인 장소를 말한다. 그러나 명확하게 정립하지 못하고 미완에 그쳤다. 사실 감각적으로 포착된 애매한 개념을 철학의 영역에서 언어로 정립하기에는 분명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예술의 차원에서 구현하는 것이 적합할 지도 모른다. 예술이 그의 심오한 사유를 명료하게 완결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어찌됐든 예술가는 자신이 경험한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감성적이고 물질적이며 구체적인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건은 자신의 표현이 개별적인 경험에서 기인함에도 타인이 공감하고 소통하기 위해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예술가는 자신의 경험을 구현하는 방법과 기술적인 측면에서 끊임없이 실험하고 변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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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주 작가의 첫 개인전 작업은 캔버스나 도화지에는 한 시간 남짓 오가는 길의 풍경을 그리는 시도를, 전시 공간에서는 그림들이 두께와 무게가 있는 하나의 사물로서 기능하도록 자리잡는 실험을 하면서 자신이 경험한 헤테로토피아의 정서를 구현하는 것이다. 작가는 전시기간 동안 그림들의 구성과 배치에 변화를 주고 조명도 바꿔보면서 '진행중'인 방식 의 전시를 연출할 것이다. 작가가 표현하는 길이 의도한대로 전시 기간 중 완결되든 미완으로 남든, 전시가 완성에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은 관객의 몫이다. 우리가 그의 감각적인 색과 선으로 구성된 여러 그림들과 이들로 구성된 공간 안에서 우리 자신의 일상이 얼마나 유토피아를 닮아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작가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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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채화 >,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