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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혼성적 예술
유원준(영남대학교 미학미술사학과 교수)
이 글은 2025년 11월 20일 개최된 ‘Hybridization: 인공지능과 혼성적 예술’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원고를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향후 심포지엄과 동일한 제목으로 출판될 비평 단행본의 연구 배경과 연구자의 주요 시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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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구 배경


1) 인공지능 예술의 대두와 근대의 실험적 예술이 제기한 예술의 혼성성

최근 인공지능에 관한 전 세계적 관심이 매우 뜨겁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구축해 온 다양한 창작 환경과 제작 과정에 침투하여 이전과는 다른 맥락에서 새로운 결과물들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예술 분야에서도 매우 뜨거운 이슈로 제기되고 있다. 지난 해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 출품전인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즈(SWPA : Sony World Photography Awards) 2023’에서 1등을 수상한 작가(Boris Eldagsen)가 본인의 작품이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제작된 것임을 밝히고 수상을 거부한 사건이 있었으며, 올해에는 미국의 사진작가 마일스 애스트레이(Miles Astray)가 국제 사진 공모전인 ‘1839 컬러사진상’(1839 Color Photography Awards) 인공지능 부문에서 < 플라밍곤 FLAMINGONE >이란 작품으로 심사위원 부문 3등상과 인기상을 수상하였으나 그것이 인공지능에 의한 사진이 아닌 ‘진짜’ 사진 작품임이 알려지며 선정이 취소되는 아이러니한 사건도 발생했다. 

위와 같은 사례들은 과거와는 다른 형식과 내용으로 구성되는 동시대 예술의 상황을 잘 드러낸다. 물론 인공지능을 위시한 최근의 기술적 환경이 예술의 이러한 변화를 유도한 주된 요소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근대 이후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예술과 과학-기술의 융합적 시도들은 과거로부터 공고하게 견지되어온 ‘예술(미술)’이란 개념을 확장하는 동시에 해체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예술 개념과 함께 지속되어온 예술가(작가)와 관객의 견고한 일방향적 구조에 균열을 발생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예술의 변화는 근대 이후 시도되었던 다양한 예술적 실험으로부터 이미 선취된 개념적 변화이기도 하다. 이에 본 연구서는 근대 이후 다양하게 제기되었던 예술적 실험들을 분석하여 이들이 시도하였던 예술의 혼성적 변화의 과정을 살펴보고 이로부터 현재의 인공지능 예술에 관한 비평 작업을 수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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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엘다크센(Boris Eldagsen), < 위기억(僞記憶): 전기기술자 Pseudomnesia: The Electrician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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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스 애스트레이(Miles Astray), < 플라밍곤 FLAMINGONE > (2024)
2) 객체지향존재론(사변적 실재론)과 사이버네틱스-혼성적 예술 사이의 관계성 정리

1960~70년대에 나타난 인공두뇌학(人工頭腦學), 즉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같은 문화-예술운동은 예술이 본격적으로 과학-기술과의 융합을 시도하며 나타난 매우 중요한 흐름이다. 사이버네틱스는 몇몇 지점에서 동시대 예술을 선도하거나 예측하게 만드는 움직임으로 기억될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하는 점은 그들이 과학-기술에 갖는 태도에 기인한다. 당시까지도 과학-기술은 예술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적이며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는데, 이는 예술 작품을 파악하려 할 경우에도 해당 예술 작품에 사용된 기술 (매체)를 단순한 수단과 재료 이상의 의미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보면 전통적으로 예술은 과학-기술(매체)를 예술의 주체로 이해하지 않고 타자의 위치로 한정시켰던 것에 반해 사이버네틱스의 경우 과학-기술을 그들의 예술적 상상력을 구현시키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며 주체적 입장에서 사유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태도는 최근의 인문학적 고찰들과 공명한다. 특히 21세기를 맞이하며 제기되고 있는 사상들이 갖는 공통점은 근대주의적 사유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이전까지의 철학적 시도들을 비판하며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인간의 ‘바깥’을 상정한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시도들은 바깥이란 의미에서 ‘인간 이후’를 상상해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포스트 휴머니즘(Posthumanism)’을 경유하며 인간이 아닌, '비(非)인간'으로서의 '사물' 혹은 '객체들'에 관한 사변(思辨)의 장소에 도달한다. 이는 지난 세기 타자들에 대한 관심들로부터 야기된 사회적 현상들, 가령 지금까지 주체의 영역에서 소외되었던 대상들과 관련한 이슈들을 좀 더 근본적인 지점에서 확장하여 우리 앞에 제시한다. ‘사변적 실재론(Speculative Realism, 思辨的實在論)’으로 명명되는 최근의 흐름은 주체의 특권을 무력화시켜버리는 동시에 그러한 입장들의 위치를 우리 주변의 사물들, 즉 객체에게로 옮겨놓았다. 혼성적 예술은 이러한 철학적-미학적 배경으로부터 과거와는 다른 예술 주체의 문제를 우리에게 제기한다. 이에 본 서는 사변적 실재론에서 제기하는 객체중심사유를 통해 근대 이후 시도되었던 예술의 혼성적 주체성의 문제를 분석하고자 한다.
3) 인공지능 및 혼성적 예술에 관한 근대-현대의 철학적 사유(주체-타자-객체)간 연계성 구축

본 연구에서는 예술을 창작하기 위한 생산 체계를 위의 세 가지 범주에서 논의하며 이로부터 발생하는 예술의 혼성화 과정을 세 가지 장으로 구분하여 서술할 예정이다. ‘주체’, ‘타자’, ‘객체’가 각 장의 소제목들인데, 이와 같은 세 가지의 분류는 예술이 제작되는 체계 및 혼성화 과정을 바라보는 주요한 시각을 반영한다. 첫 번째 장인 ‘주체’에서는 과거로부터 예술이 산정해 온 예술 주체에 관하여 근본적인 질문들을 제기한다. 가령, “예술의 주체는 ‘인간’만으로 한정될 수 있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러한 예술의 근원적 영감을 제공하였던 자연의 경우 어떻게 대상화 할 수 있는가?”, “인간 중심주의적으로 사유된 예술 주체는 어떠한 한계점을 맞이하고 있는가?” 등의 질문들인데, 이와 같은 질문들은 향후 예술 주체가 마주하게 될 변화의 지점 및 배경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매우 필수적인 요소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이러한 문제의식은 비단 ‘예술’ 주체에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예술은 매우 예민하고 섬세하게 시대 정신을 반영하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당시 인간 주체에 관한 다양하고 깊이 있는 접근들은 직·간접적으로 예술 주체가 형성되고 변화하는 일련의 과정과 연동한다.

두 번째 장인 ‘타자’에서는 앞서 제기했던 예술 주체의 문제가 모더니즘을 넘어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다루어졌던 일련의 상황을 검토하며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는 예술 작품의 생산적 체계에 주목한다. 특히 이러한 과정에서 과거에 소외당했던 주체들이 어떻게 새로운 예술 주체로서 등장하게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데, 이는 근대 이후 다양하게 등장했던 실험적 예술들이 표방했던 주제들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즉, 예술가들은 일종의 제안자가 되어 직접 예술 작품을 제작하는 것에서 벗어나 이전까지 생각하지 못한 영역을 발견하고 제시하는 행위적 주체로 변모하는데, 이로부터 예술의 개념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확장된다. 동시에 예술 작품의 관객은 단순한 수용자가 아닌 참여자로 규정되며 예술은 그러한 타자들의 개입으로부터 적극적으로 의미를 생산하는 일종의 사건이 된다. 

마지막 장인 ‘객체’에서는 앞서 제기했던 예술 주체의 문제가 객체적 대상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특히 최근 제기되고 있는 포스트 휴머니즘 및 사변적 실재론과 같은 철학적 지류로부터 인간의 바깥 영역에서 제기될 수 있는 예술 주체의 문제를 다루는데, 이는 인간 중심주의적 사유에서 벗어나 비-인간, 탈-인간적 시각으로 예술 작품이 지닌 새로운 가능성을 분석해보는 데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의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예술) 주체는 객체적 대상으로서 이전까지와는 다른 해석적 접근 방식을 요구한다. 이에 예술 작품과 감상자를 하나의 혼성체로 간주하는 ‘객체지향존재론(Object Oriented Ontology)’의 입장 및 객체들 스스로 자기 생성체계를 갖추고 주체의 의도 밖에서 작동되는 영역을 탐구하는 일련의 생물학적 접근들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연구자의 주요 시각


1) 주체-타자-객체 : 

본 연구에서는 예술을 창작하기 위한 생산 체계를 위의 세 가지 범주에서 논의하며 이로부터 발생하는 예술의 혼성화 과정을 세 가지 장으로 구분하여 서술할 예정이다. ‘주체’, ‘타자’, ‘객체’가 각 장의 소제목들인데, 이와 같은 세 가지의 분류는 예술이 제작되는 체계 및 혼성화 과정을 바라보는 주요한 시각을 반영한다. 

2) 생성(산) 체계에 따른 예술의 변화 : 

예술의 혼성화 과정은 다층적인 각도에서의 분석이 가능한 그리고 이후 새로운 시각으로의 접근에도 열려있는 매우 치열한 변화의 과정이자 여전히 진행 중인 핵심적 문제이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본 서적은 해당 문제를 주체와 타자, 객체라는 세 가지 범주를 통해 서술하고자 하는데 이는 예술의 생성 혹은 생산 체계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동된다. 예술은 현재의 시점에서 주체와 타자, 객체를 아우르는 생산 체계로 분류될 수 있다. 과거로부터 우리가 예술이라고 간주해 온 창작물의 경우, 인간을 그것의 창작 주체로서 전제하는 이른바 ‘자기-생성(산)적 체계’ 안에서 발생 혹은 제작되어 왔다. 인간은 자연적 창조물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인식하며 인공적인 창작물을 제작해왔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예술은 탄생 혹은 개념화 되었다. 따라서 ‘자기생성(산)체계’란 표현에서의 ‘자기’는 자연과 인간으로 갈음되는 자연적 주체의 영역으로 볼 수 있다. 예술이 이러한 체계에서 벗어나게 되는 계기는 근대 이후 만들어지게 된다. 뒤샹의 레디메이드와 같은 사례들처럼 예술은 작가가 직접 제작하지 않는 대상들, 즉 ‘타자’에 의해 생산된 것들의 경우까지 포괄하는 범주의 확대를 이루어냈으며 이후 예술은 더 이상 작가에 의해 제작된 수공적인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게 되었다. 즉, 예술은 자기-생성(산)적 체계에서 타자-생성(산)적 체계의 결과물로 이동을 꾀하게 된 것이다. 

앞서 설명한 두 가지 주요한 예술 생산의 축은 현대에 들어와서 또 다른 분기점을 맞이하게 된다. 즉 인간 주체가 아닌, 이전까지 객체적 대상으로 인식했던 것들에 의한 예술 창작의 환경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만약 근대 이후의 예술적 시도들이 주체에서 타자로의 중심 이동을 가능케 하였다면, 현재의 경우 예술 생산자의 범주는 인간 바깥의 영역에까지 침투한다. 이러한 흐름은 자연스럽게 과학 기술 매체와 융합된 예술의 모습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는데, 최근의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적 매체는 그들 스스로 도구적 객체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예술을 창작하는 주체의 역할을 수행하려고 시도한다. 바야흐로 객체-생성(산)적 체계로서의 예술이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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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도식은 현재까지의 예술 생성(산)의 문제를 시기별/작가별/관객의 입장별로 나누어 구성해 본 것이다. 본서에서 주요하게 논의하고자 하는 예술 생성(산)의 체계별 구분은 각각 저마다 다른 ‘시기’에서 수행된 예술의 결과라는 점에서 그리고 차별화되는 작가와 관객의 역할과 입장을 지닌다는 점에서 구분될 수 있는데, 물론 이러한 구분 특히 시기와 관련된 분별은 매우 조심스럽게 논의될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흐름과 경향이 과거에서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작가의 입장과 관객 경험의 형태를 촉발시키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본서의 구성에서 제기하는 세 가지의 구분, 즉 주체, 타자, 객체에 이르는 세 가지 항과 예술의 생성 체계 구분을 연동시켜 이해해 보는 것이 본 서적의 주요한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