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태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노 관장이 자신의 개인전에서 급작스럽게 홍 시장의 초상화를 건 이후 대구미술관 관장이 되었으며, 안 작가와 연 평론가는 이 문제를 《올해의 청년작가》展에서 설치작업과 ‘보이즈 러브’ 픽션 텍스트로 풀어낼 계획이었다.
둘째, 문예관 측은 개인의 초상권과 저작권 그리고 명예 훼손을 근거로 작품을 검열하고 전시 예정이었던 4전시실을 폐쇄하였다.
셋째, 안 작가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의 청년 작가들은 동료 작가가 기관에 의해 검열을 당했음에도 아무도 연대하지 않았으며 그중 한 작가는 문예관을 옹호하였다.
넷째, 문예관은 헌법적 가치를 들먹이며 안 작가와 연 평론가를 겁박하고 있다.
‘청년’이라는 호칭은 시대와 사회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과 새로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청년작가들의 작업은 일종의 실험실과 같다는, 우리는 청년 세대가 직면한 고민과 감정, 그리고 그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엿볼 수 있다는, 이번 전시가 젊은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사고와 창조적인 시각을 통해 관람객에게 새로운 영감을 선사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는 《올해의 청년작가》展은 그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명백하게 실패하였다. 그들은 대구시장과 대구미술관장이 엮인 문제를 지적하는 파레시아스트(parresiastes: 진실을 말하는 자)의 솔직함을 견디지 못했다. 비판 대상의 당사자가 아님에도, 대구시와 대구미술관의 권위에 눌려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문예관은 예술에 관한 자신들의 시각이 후진적이고 편협하다는 것을 시인해 버리고 말았다.
문예관의 검열은 푸코 식으로 미세한 권력 구조를 만드는 행위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이번 사태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중앙에 감시탑이 있고 자신이 감시당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원형 감옥 판옵티콘은 이제 각 예술가의 신체로 흡수된다. 검열을 당한 작가들은 물론이고 이 사태를 본 우리 모두가 그렇다. 우리는 이제 대구시가 만들어 낸 감시탑을 몸에 지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검열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내가 어떤 행위를 했을 때, 내가 시 관계자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작업을 했을 때 감시탑은 작동된다. 더 나아가 감옥을 탈출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엄하게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교육시킨다.
어렸을 때부터 받아온 미술에 대한 편협한 교육, ‘너는 이제 성공한 작가’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주요 기관에서의 전시경력, 이 경력을 토대로 자신의 시장 가치를 드높여 가는 예술가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으로 ‘말 잘 듣는 예술가 만들기’를 시도하는 문화예술기관.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이번 검열 사태로 인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특히 검열당한 예술가와 비평가에게 적극적인 연대 의사를 보여주지 않는 다른 4명의 작가들을 보면 자기 검열을 넘어서 기관의 헤게모니가 작동하고 있는 사실 또한 드러난다. 헤게모니는 지배 집단이 물리적인 힘뿐만 아니라 문화와 이념을 통해 피지배 집단의 자발적 동의를 이끌어 내는데, 위에서 언급한 한 작가의 발언은 이에 아주 적합한 예시가 된다. 즉 현대사회의 견고한 지배 이념인 자본주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예술가와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교육받은 착한 학생이 적절하게 섞인 형태로 나타나며 이는 국가가 아주 오랫동안 교묘히 만들어온 오늘날 일등시민의 형태를 대표한다.
글을 쓰고 있는 현재까지도 안윤기 작가와 연혜원 평론가는 외로운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언제까지 우리는 기관이 심어놓은 자기 검열 메커니즘을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하는가. 언제까지 반기를 들면 속된 말로 ‘나대지 말라’는 얌전한 학생들의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가. 행정기관에 미운털이 박히면 지원사업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언제까지 전전긍긍하고 있어야 하는가. 예술의 가치는 국가가 정하는 것도 지자체가 정하는 것도 아니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정말 누구나 거창하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진심 어린 실천으로 삼을 수 있는 예술가가 적다는 사실에는 매우 서글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