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의 노동자 대투쟁 이후 대한민국의 자동화 수입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1)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1871~1919)가 말한 것처럼 노동자 대투쟁은 경제 투쟁의 싹을 틔움과 동시에 그 역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고,2) 역의 결과로 인한 자동화 수입은 인간의 노동을 기계로 대리하는 것으로 경제 발전의 중심점을 삼는다. 이후 현재 대한민국과 중국은 세계 최대의 로봇 수입국가 1, 2위를 다투는 중이다. Luca Vicente & Helena Matute의 2023년 보고서 「Humans Inherit Artifcial Intelligence Biases」(2023)는 AI를 탄생시킨 인간이 역으로 AI를 통해 편견을 물려받을 수 있음을 제기한다. AI와 관련한 거대기업의 윤리팀들이 축소되거나 사라지는 것3) 역시 인공지능이 가늠할 수 없는 속도로 전지구적 확산에 든든한 토대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언론을 통해 뇌종양을 가졌으나 건강한 몸을 가진 사람과 신체 이상을 가졌으나 건강한 머리를 가진 두 사람이 각각의 건강한 부위 결합만을 통해 하나의 인간이 되는 수술이 AI에 의해 가능하다는 한 과학자의 발표를 접했다. 과학과 기술의 결합이 어디까지 이른 것인지. 생명윤리와 그로 인해 파생될 문제에 대한 고민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이는 이미 우리 인식의 한계를 넘어선 듯하다. 공동체는 소멸하고 개인주의는 창궐한다. 자본은 함께 사는 세상이 아닌 소수가 누리는 세상을 향해 폭주하는 열차에 끝없이 창궐하는 개인주의를 연료로 공급한다.
여기에 더하여, AI나 CHAT GPT처럼 자동화된 ‘생성주의적’ 세계관 안에서는 젠더 편향이나 인종, 약자 혐오 등이 사회적인 논쟁이나 주장 없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거나 전산학적으로 소독된 형태의 뻔한 확률적 모범 답안으로 제공될 공산이 크며, 이는 주류 세계관의 확대 재생산으로 이어지기 쉽다. 물론 이들 인공지능이 이러한 극단적인 현상만을 가져온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으나 불과 10년 만에 대한민국 국민 중 대다수가 스마트 기계 없이 살 수 없을 지경에 이른 것을 보면 극단적인 상상을 거둘 수는 없다.
문장과 이미지를 생성하는 리믹스 기계들이 어디든 산재하며, 자동화 세상이 가져다주는 편리함과 손쉬운 사용법은 직접적인 인간의 물리적 감각, 사물과 사건, 타자의 존재, 원본 사이트와 출처 등 대상 세계로부터 캐묻고, 찾고, 만지고, 느끼는 비판적 성찰 과정에서 멀어지게 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따라서 이러한 방식으로 인간의 AI 편향 학습이 누적된다면 의사결정, 판단, 일 수행 방식을 규정하는 과학적 근거로 자동화 방식이 주는 수열화된 증명 방식으로 굳어져 결국 편견을 내재화하게 될 가능성도 함께 높아질 것이다. 이미 우리는 스마트 기기의 오남용으로 인한 폐해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으므로 앞선 이야기들은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자동화 방식에 익숙해져 비판적 성찰 과정에서 멀어지지 않을 대안으로, ‘Archival Art’를 제안하려 한다. 기계와 인간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이 무의미한 지금‘AI적 인간형성’에 있어 Archival Art는 과연 대안이 될 수 있을까.
- AI的 인간 형성
인간 형성은 인간의 성장과 발달 과정에서 인격, 지식, 가치관, 도덕적 성품 등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교육, 사회적 경험, 문화적 배경, 가정 환경 등 다양한 요인들이 결합하여 이루어지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인간 형성은 개인 삶의 방향과 행동 방식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주로, 교육的 인간 형성이나, 철학的 인간 형성이라는 개념을 접하게 된다. 교육적 인간 형성이 교육을 통해 인간의 전인적 성장을 이루는 과정을 의미한다면, 철학적 인간 형성은 철학적 사고와 교육을 통해 인간의 인격, 사고 방식, 가치관 등을 형성하고자 하는 개념이다. 공통점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타인과 세계를 이해하며, 더 나아가 윤리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제 우리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 중인 AI까지 인간 형성을 다루는 범주에 포함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AI的 인간형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를 AI에게 질문해 보았다.
“AI的 인간형성은 인공지능(AI) 기술이 인간의 성장과 발달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개념을 탐구하고
AI가 교육, 자기 계발, 윤리적 판단, 사회적 상호작용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인간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 CHAT GPT -
AI는 윤리적 판단과 사회적 작용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기에서는 그중, 앞에서 나열한 ‘AI的 인간 형성’에 있어 과도하게 인간이 기술 발달에 의존하게 될 때 야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대안으로서 동시대 예술의 한 방식인 ‘Archival Art’로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 한다.
- Archival Art
“진실의 작은 조각들이
지금 이렇게 아카이브에 좌초해 있다”
- Arlette Farge -
아카이브를 통해 얻는 거대서사이건 미시사이건, 이러한 정보는 ‘에토스의 작은 조각들’이라고 아를레트 파르주(Arlette Farge, 1941- )는 이야기한다. 여기서 ‘에토스’란 각 존재가 눈앞의 사건에 대해서 생각하고 증언할 때 그 말들을 통해 전해지는 그 존재의 근원적인 무언가, 다시 말해 그 존재의 인격, 미감, 개성, 상상계, 그 존재가 자기가 속한 사회를 대하는 특별한 방식을 뜻한다. 이러한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예술가들이 작업하는 방식을 Archival Art라고 한다.
기록학 용어인 아카이브가 현대미술에 끼친 영향력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는데 첫 번째는 미술작품을 비롯해 미술의 범주에 있는 미술가, 단체, 전시, 행사 등과 관련된 기록물 그 자체를 의미하거나 이런 기록물을 수집하고 관리하여 연구하는 기관으로서 아트 아카이브(Art Archives)이다.4)
두 번째는 아카이브 아트(Archival Art)이다.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은 작가나 작품과 관련한 기록물을 전시하는 아카이브 전시로 이어졌고 나아가 기록 생산이나 수집 분류 등 아카이브의 구조나 방법론 등을 활용한 미술작품이나 미술 실천을 뜻하는 아카이브 아트로 확대되었다.5)
동시대 미술 경향으로 ‘아카이브 아트’를 언급한 할 포스터는 이 작업을 하는 미술가들은 “상실된 혹은 추방된 역사적 정보를 물리적으로 현존하게끔” 만드는 이들이라 말한다. 그는 아카이브 미술의 “연결될 수 없는 것을 연결하려는” 의지를 언급한다. 배제된 기억을 복원하고 대안적 기억을 생산하는 시도로서의 아카이브 방법론은 누락된 역사 속에서 분열된 것들이 예술 안에서 화해하도록 돕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기억은 비단 인간에게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대체 아카이브 아트는 뭐란 말인가? 아카이브라는 망망대해와 같아서 좁은 범주로 정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사 레슈코(Isa Leshko, 1971- )의 Archival Art 작업을 통해 망망대해에서 기억의 편린 하나쯤은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