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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게임을 아우르는 진화심리학적 접근
 -문명발전게임 갓어스(godus)-
주경은


디지털 게임의 발전은 초기 아케이드 게임인 〈퐁(Pong, 1972)〉으로부터 시작되어 가정용 콘솔 게임의 대명사인 닌텐도와 현대의 모바일게임에 이르기까지, 기술 진보의 역사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오늘날 게임은 기술발전에 그치지 않고, 인간 경험의 근본적 변화와 문화적 상호작용을 반영한다. 최근 게임 산업은 닌텐도의 〈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 2018〉과 같은 오픈월드(openworld)게임을 통해 경계를 허물며, 한국게임사 크래프톤(krafton)에서 출시예정인 〈인조이(inZOY)〉와 같은 AI 기반 게임들을 통해 사용자 맞춤화를 실현하고, 풍부한 창작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처럼 게임은 단순한 오락수단을 넘어서 사용자가 주체적으로 창작에 참여하고 자신만의 경험을 만들어 가는 매개체로 발전하고 있다. 나아가 게임은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게임디자이너이자 개발자인 제인 맥고니걸(Jane McGomigal, 1977-)은 『누구나 게임을 한다』에서 인류세(Anthropocene) 시대의 변화를 위한 대안으로 '신게임(godgame)'을 언급하기도 했다. 신게임은 플레이어가 신의 위치에서 세계나 문명을 발전시키고 관리하는 시뮬레이션 게임 장르로, 자연현상이나 종교, 신화 등을 소재로 다루며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의 창조적 본능과 문명 발전의 원리를 게임에 투영한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신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생물학적 진화의 기본 원칙인 선택과 변이를 게임 내에서 재현하게 된다. 이는 생존과 번식을 중심으로 하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키며, 문명의 진보와 같은 복잡한 사회적 구조를 설계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통해 예술적 창조력을 발휘하도록 독려한다. 이 과정은 플레이어에게 문명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탐구하는 동시에, 문명 관리와 창조적 욕구라는 복합적 행위를 통해 인간 본성의 깊은 층을 탐색하게 한다. 이러한 특징은 신게임의 선구자로 불리는 피터 몰리뉴(Peter Molyneux, 1959-)가 2013년 개발한 〈갓어스(godus, 2013)〉에서 잘 드러난다. 갓어스 속 요소들은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생존과 번식, 그리고 예술의 본질적 특성을 상기시켜준다.

갓어스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황량한 땅에서 물에 빠진 남성과 여성을 구해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플레이어가 전지전능한 손가락으로 화면을 끌어 땅을 만들어 주면, 이들은 플레이어의 신자가 되고 그곳에 집을 지어 가족을 구성한다. 게임에서 신의 역할로 분한 플레이어의 1차 목표는 신자들의 ‘생존과 번식’으로 신자들의 생존을 위해 거주지를 제공해야 한다. 거주지를 제공받은 신자들이 번식 활동을 하며 인구를 늘리는 것이 기본적인 게임의 진행방식이다. 집을 짓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신자들의 거주지 위에 방울이 생기는데, 이 방울을 클릭하면 신자의 믿음을 얻게 된다. 이 믿음으로 땅을 다지고 바위나 나무 등을 심거나 제거하는 능력을 얻어 자연을 가꾸며, 기술을 익혀 농사를 짓고 도구를 사용해 보석을 캐기도 하는 등 문명의 발전을 이룩해 나간다. 어느 정도 플레이가 진행되면 신자들은 정착지를 만들어 마을을 구성하고 더 큰 믿음을 만들어 낸다. 이 단계에서 개발자는 플레이어의 2차 목표로 또 다른 부족을 등장시키는데, 이들과 누가 더 행복한지 경쟁하게 된다. 게임에서 행복도를 올리는 방법에는 마을 단위로 축제를 열 수 있는 분수를 만들어 주거나, ‘기쁨의 나무’를 심어주는 것이다. 신자들은 플레이어가 만든 자연환경에서 춤을 추거나 축제를 열어 즐기기도 하는 등 행복도를 올려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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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어스의 기본적 플레이 방식인 ‘생존과 번식’은 개발자가 게임에 진화론적 개념을 적극적으로 반영했음을 시사한다.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부스(David Buss, 1953-)에 따르면 생물은 변이와 선택에 의해 진화하는데, 생존에 유리한 변이는 유전적으로 계승되고 불리한 변이는 자연 도태된다. 따라서 인간의 심리적 구조 또한 번식과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된다고 주장하며, 이점은 게임의 개발자가 가상 세계를 창조하는 것에 인간의 물리적 요소를 반영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게임 내에서 신자들의 '믿음'은 수렵과 채집 시대에 집단 협력을 통해 생존능력을 강화했던 사회적 현상을 반영한다. 갓어스는 불리한 환경에서 생존을 더 유리하게 만들어 가는 인간의 역사를 시뮬레이션하며, 생존에 유리한 환경 조성과 문명 발전의 진화과정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주목할 점은, 기본적인 생존과 번식을 위한 방식 외에 ‘행복’이라는 감정적 요소를 위해 분수 앞에서 춤을 추거나 축제를 하는 유희적 활동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생존과 번식을 넘어서, 게임 내에서 발견되는 '행복'과 같은 감정적 요소들은 유희적 활동을 통해 신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이러한 점은 단순히 게임에서 사용하는 경쟁 요소를 넘어 진화심리학이 설명하는 예술의 발생 기원, 즉 감정적 쾌락의 추구로 볼 수 있다. 

진화예술학자 엘렌 디사나야케(Ellen Dissanayake)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예술이 유희, 즐거움, 감동과 같은 감정적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에서 발생했으며, 이는 생존에는 불리하지만, 그것을 능가하는 이익이 있다고 주장한다. 게임 속 등장하는 유희적 요소와 감정적 쾌의 추구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예술의 본질적 발생 계기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점이기도 하며, 예술이 생존을 위한 간접적 이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내포하는 지점이다. 나아가 디사나야케는 감정적 쾌를 추구하는 유희와 예술의 유사성은 어린아이들이 역할놀이를 하며 실제 경험에 대한 행동을 미리 연습하고 서로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는 것과 같은 진짜가 아닌 ‘척하기’에 있고 말한다. 즉, 플레이어가 게임 공간에서 플레이하는 모습은 어린이들의 역할놀이와 같이 실제 경험을 모방하는 행위를 통해 필요한 사회적 기능을 연습하고, '척하기'를 통해 사회화 과정을 배우는 것과 유사하다. 게임 내에서 이루어지는 축제나 춤과 같은 행위들은 이러한 감정적 쾌락의 추구를 가시화하고, 어린이들이 역할놀이를 통해 필요한 사회적 기능을 연습하듯, 플레이어는 게임을 통해 사회화 과정을 경험하고 연습한다. 이를 통해 게임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서 사회적 상호작용과 정서적 표현의 연습장이 되며, 예술의 본질적 기능을 게임이라는 현대적 매체를 통해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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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점은 갓어스의 형식적인 요소에서도 드러난다. 갓어스는 플레이어가 게임 환경을 비교적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샌드박스(Sandbox)형 게임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샌드박스형 게임은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놀이터 모래 상자에서 유래된 것으로 유저가 정해진 목표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플레이하는 형식 또는 장르를 말하며 플레이어의 창조적 욕구에 대한 발현을 중시하는 장르다. 갓어스는 플레이어가 땅을 형성하고, 물길을 만들며, 다양한 자연 요소와 인공적 구조물을 배치할 수 있어, 단순한 생존과 번식이라는 게임 메커니즘을 넘어서 창의적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플레이어가 단순한 문명 구축을 넘어서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감각적 쾌의 추구로, 그 과정에서 자신의 창의성을 탐색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더불어 이러한 형식적 요소는 현실 세계의 커뮤니티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이용자들은 커뮤니티 공간에서 자신의 게임 경험을 공유하고, 개발자와 소통하며 게임 환경을 개선해 나가며 사회적 상호작용을 경험한다. 이는 플레이어가 단지 가상공간에서 놀이를 즐기는 것을 넘어, 다수에게 자신의 창의력과 개성을 표현하는 미적 경쟁의 장을 열어 준다.

갓어스와 같은 게임은 기술의 발전과 문화적 상호작용의 결합을 통해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현시대 디지털 게임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이러한 점은 뉴미디어아트와 같이 유희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동시에, 상호작용을 통한 창조적 참여와 미적 탐색을 강조하는 경향과 상통한다. 갓어스는 단순한 시간 소모의 수단을 넘어서, 플레이어가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하고, 사회적 기술을 연습하며, 문화적 경험을 확장하는 플랫폼으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갓어스와 같은 최근의 게임 경향은 예술과 기술의 융합, 그리고 인간의 진화와 문화의 발전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llen Dissanayake, Homo Aestheticus: Where Art Comes From and Why, New YorkL The Free Press, 1992.
데이비드 버스, 이충호 역 『진화심리학』, 웅진지식하우스, 2012.
제인 맥고니걸, 김고명 역, 『누구나 게임을 한다』, 알에이치코리아, 2011.

김성필, 「샌드박스 게임에서 나타나는 놀이 유형과 재매개성의 상보적(相補的) 특성-탐색적 연구」. 『일러스트레이션학회』 20집, 2019. pp. 111-124.
김희선, 「오픈 월드 게임의 중첩적 구성과 메타시뮬레이션 고찰」, 『한국게임학회』, 20권, 2020년, pp. 4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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