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작업 노트 중 “글로벌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병폐와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능성, 합리성, 효율성으로 점철된 일상을 파괴하여 인간의 창조성이 발휘되는 새로운 상황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부분에서 본 콜렉티브가 지시하는 문제와 그 영역이 매우 넓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님들 각자가 피부로 느끼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병폐의 사례는 어떤 게 있으며, ‘지루한 일상’은 어떤 의미인가요.
성호- 일상의 행동이나 자신이 추구하는 어떤 것들이 돈이라는 가치로 모두 치환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병폐죠. 어떤 사람한테 커피를 사준다고 하면 단순히 사주고 싶어서 사줄 수도 있잖아요? 너무 사소한 사례일 수도 있지만, 그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나 좋음이 너무 ‘사준다.’에 방점이 찍히는 느낌인 거죠. 경제로 치환이 안 되는 좋은 가치도 많잖아요? 그런데 이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한다거나 경제적인 것들을 충족하기 위해서만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지루하다는 표현을 통해 나타나는 것 같아요.
태욱- 지루한 일상은 컨베이어 벨트 같은 삶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이 사회에서 돈은 필수가 되었어요. 우리는 이 틀에서 지루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죠. 다들 틀에 맞춰진 삶을 살아가요. 지루한 일상에서는 어떤 현상이나 사건이 발생했을 때 딱히 왜라는 질문을 안 던지는 것 같아요. 그냥 기사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더라, 하고 넘어가는 거죠.
4. 한편, 현재 글로벌 자본주의가 주도적이기는 하나 어떠한 정치, 경제 체제라 하더라도 완전무결할 수는 없을 텐데요. 그렇다면 ‘미술은 언제나 저항의 형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성호- 현대미술이라면 언제나 저항의 형식으로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서의 저항이 어떤 의미나 방식인지 묻는다면, 저는 아감벤이 이 부분을 잘 정리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감벤은 동시대인을 ’이 시대에 발을 붙이고 있지만, 거기에서 한 발짝 물러나 시차를 두고 바라보는 자‘라고 정의해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어떤 일들에 매몰되어있는 게 아닌 그곳에 발을 붙이고 있지만 메타적인 관점에서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자이죠. 현재의 어둠을 바라볼 수 있고, 그렇기에 현재에 저항할 수 있는, 그 인물이 동시대인이라고 하면 그 인물이 만들어내는 미술이 현대미술 또는 동시대 미술 아닐까요?
태욱- 저는 미술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전반적으로 이런 느낌이 들어요. 미술이 그저 오브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생명체처럼 살아 숨쉬기 때문에 저항의 형식을 가지는 것 같은 느낌. 왜냐하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루한 일상 때문에 사람들이 외면하거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미술가들이 보여줘서 사회를 환기해 주는 것이 미술이기 때문에 저항의 형식이 자주 보이게 되는 또 다른 이유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