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하드디스크를 사용한 작업을 거의 20년 가까이 해왔어요. 사람이 무언가를 긴 시간을 해오다 보면 질릴 때가 있잖아요. 저도 그럴 때가 있긴 했는데, 계속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이걸 증폭해서 뭔가를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악기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한테는 이 장치를 악기로 드러내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것을 전시에 쓰자고 했을 때는 사실 걱정스러웠어요. 괜찮을 거라고 제안해 주신 건 박성준 작가님이에요. 전시장 내에 이를 배치한 의도 혹은 이걸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지에 관한 부분을 박성준 작가님께 여쭤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그 공간에 채워진 음과 하드디스크 장치에서 만들어지는 소리의 결이 상당히 다른데, 그 구분되는 지점들로 인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효과나 느낌이 있을 거라 여기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제 악기를 전시하는 것이 국내에서는 처음인데 이런 순간이 한 번쯤 오긴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더불어 음악과 노이즈에 관해, 이제는 그 구분 자체가 무의미한 시대에 살고 있지 않나 싶어요.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노이즈를 듣기 싫은 무언가 혹은 없애버려야 할 무언가로 치부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어떤 음악이 되게 듣기 싫을 때도 있지 않나요? 그럼 그 순간 음악은 그냥 노이즈가 되는 거죠. 그런데 그게 또 누군가에게는 아주 좋은 음악으로 들리잖아요. 이처럼 노이즈에 대한 상대적인 정의가 충분히 가능할 만큼 시대는 다원화되었고, 노이즈가 어떤 소리 중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각자의 음악 작업에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그러한 시대의 반영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은 음악이고, 어떤 것은 노이즈다.’라고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6. 앞서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던 공연(‘Over Montage’)에 관해 짧게 언급해 주셨습니다. 전시 공간 내에서 회화 작품, 그리고 조명 효과와 더불어 감상하는 음악 공연이 새롭게 느껴졌는데요. 이처럼 음악을 위한 공간 아닌 곳에서 진행되는 공연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번 공연에 관해 먼저 이야기하자면, 사실 그 공연은 제가 하고 있는 즉흥 음악 혹은 실험 음악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전시를 위해 제작했던 여러 사운드 중 전시에 반영되지는 않았으나 공연으로 풀어낼 수 있을 만한 것들을 구성해서 만들어 본 것이고요.
미술관은 사실 말씀해 주신 것처럼 음악을 위해 조성된 공간은 아니죠. 이러한 곳에서의 공연이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제 도전 의식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어요. ‘내가 이런 곳에서도 소리를 가지고 뭔가 할 수 있구나. 그럼 공간이 조금 여의치 않더라도 극복해 보리라.’하는 생각으로 임하게 되는 부분이 있고요. 다만, 이제는 조금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미술관 측은 때때로 ‘사운드 아트’라는 이름으로, 꼭 그게 아니더라도 여러 다양한 방법으로 소리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공간 안에 끌어들이고 있음에도 그것을 위한 환경 조성과 투자에 인색하지 않나 싶어요. 다행스러운 점은 이러한 문제를 오랫동안 제기해온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것이 문제라고 느끼는 관계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 그러므로 기준이 바뀔 조짐이 보인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7. 마지막으로, 세 분의 협업을 ‘충돌의 몽타쥬’라고 정의하셨는데, 작가님이 의도한 ‘충돌’은 어떠한 의미인가요.
저는 ‘충돌’이 별개의 에너지가 섞이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러한 과정이나 지점을 설명할 여러 단어가 있겠지만, 이번 전시가 함의하고 있는 바를 드러내기에 ‘충돌’이라는 단어가 가장 유효했던 것 같아요. 충돌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여러 파편이 거기에 널려있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각각의 파편, 에너지가 펼쳐지는 과정을 나타내기에 적합한 단어였던 것 같아요.
덧붙여서 박성준 작가님의 제안 덕에 제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들 그리고 오랫동안 하지 않았던 것들을 이런저런 핑계로 해볼 수 있어서 좋았고요. 제 작업이 두 작가님께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모르겠으나, 가까이서 작업을 같이 하면서 그분들의 방법론에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예를 들면, 저도 공연 설치 등을 기획할 때 센서 기반으로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들었고요. 회화 작가들이 무언가 생각나면 붓을 먼저 잡듯, 나도 그런 상황에 내가 이전에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붙잡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앞으로의 작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들이 뭔지 점검해 보고, 한 발짝 물러서서 여러 부분을 고려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