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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의 몽타쥬, 강렬함을 넘어
박성준
1.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저는 인터랙티브 설치, 미디어 퍼포먼스, 영화/영상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인간의 관념과 실재 사이의 부조리를 탐구하고 있어요. 작업은 대체로 영상 언어를 해체하거나 조합하여 실재와 다른 혼돈과 괴리의 공간을 제시하는데요. 마치 무대 혹은 세트장과 같은 모습으로 표현/재현(représentation)되고, 제 작업들의 메인 테마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욕망과 불안의 갈등’을 다시 ‘영화적 내러티브’로 드러내게 됩니다. 근래에는 인터랙티브 설치 작업을 주로 하고 있는데요. 작품을 대할 때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그걸 둘러싼 환경, 비물질적인 부분들도 활용해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 혹시 답변 중 비물질적인 부분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글쎄요, 경계를 나누기가 애매한데요. 어떤 조소나 회화 작품이 있을 때 그것을 단순히 물질로 받아들이느냐 혹은 관람자와의 상호작용 안에 놓인 요인으로 농밀하게 들어가 있느냐의 문제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전시에서 조명이나 센서의 역할은 물질적 존재로서 눈에 띄지 않지만, 이번 전시는 반대로 그런 부분이 관람자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작품의 일부로 발현되고, 표현되고, 재현되고 있어요. 따라서 어느 하나의 요소에만 방점을 두기보다는 여러 부분을 두루 활용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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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의 몽타쥬, 강렬함을 넘어》 포스터, 전시 전경
2. 지금 예술발전소에서 진행 중인 《충돌의 몽타쥬, 강렬함을 넘어》를 기획하신 것으로 압니다. 일반적인 그룹전과는 다른 형태의 협업이 이루어진 것 같은데요. 본 전시의 기획 배경이나 의도에 관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우리가 회화를 볼 때, 그에 연상되는 어떤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거나 혹은 음악을 듣고 어떤 이미지를 상상하게 되거나 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런 경험을 전시 공간에 드러내고, 그 일부를 부각시켜, 관람자가 그림이나 음악에 보다 몰입하여 감상할 수 있게끔 문을 열어보고자 했어요. 이러한 기획에 범진용 작가님의 내러티브적인 요소들이 구심점이 되었고, 그것이 전시 전반을 이루고 있어요. 범진용 작가님이 추구했던 그림의 본질적인 의도나 주제가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평면에 머무르지 않고 3차원의 공간에 구현되게, 더불어 그 감정이나 정서까지도 좀 더 입체적으로 표출시켜 보고자 했어요.


3. 전시에 참여하신 세 작가님이 각각 다른 장르의 작업을 전개하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이번에 하나의 공간을 구성하며 주요하게 고려했던 부분이나 새롭게 느낀 바가 있을까요?

사실 제게는 종합적인 장르를 아우르고 그것을 하나로 만드는 게 익숙한 행위라 지난 작업들과 비교해서 크게 다를 건 없었는데요. 다만, 개인적으로 범진용 작가님의 그림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왜, 어떻게 이런 그림이 만들어졌을까에 관한 프로세스를 작가님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고, 그 과정은 그리 낯설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 범진용 작가님의 작업이 꿈에 관한 것이라고 해도 결국에는 인간의 내적인 갈등 등이 꿈으로 발현되고 표현되는 것이고, 그것이 다시 그림으로 승화되는 과정들이 제가 하는 작업이나 진상태 작가님의 사운드 작업과 크게 다를 바는 없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저 어떤 매체를 사용하는지가 다른 것이고, 그게 때로는 제한적으로 표현될 수 있죠. 그걸 풀어보고자 노력했어요. 따라서 이 전시는 관람자가 작품에 더 몰입하여 감상할 수 있는 환경에 방점을 두고 여러 매체가 서로 개입하고 결합되고 또 융합되도록 했던 것 같아요.
작품은 세 작가들이 같이 모였을 때 그 힘이 발현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하나의 공동 작업으로 상정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전시기획과는 좀 달랐어요. 그 때문에 진상태 작가님이나 범진용 작가님이 양보하고 가다듬고 갈등하고, 또 희생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았죠. 완전히 자기 자신을 낮추고 어떻게든 변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려고 많은 노렸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림은 이미 완성된 채로 그대로 놓여있는 거 아니냐.’하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전시에서 조명을 제한하거나 조정했잖아요. 그건 회화 작업을 하는 작가 입장에서 엄청난 도전일 수 있거든요. 빛이 없다면 그림은 제 고유의 색이 절대 나오지 않죠. 3막의 풍경과 이미지 프로젝션의 경우 그림 위에 복제된 이미지를 프로젝션해서 입체적인 느낌을 만든 건데, 그런 것도 사실 범진용 작가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고, 그런 부분 하나하나가 다 희생의 영역이었던 거죠. 마찬가지로 진상태 작가님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 내세우지 않고 범진용 작가님의 내러티브가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 맞추고 걸러내는 사운드 작업을 해주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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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진용, < 풍경 >, 227×870c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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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의 몽타쥬, 강렬함을 넘어》 3막
4. 세 분의 협업을 ‘충돌의 몽타쥬’라고 정의하셨습니다. 작가님이 의도한 ‘충돌’은 어떠한 의미인가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텐데요. ‘충돌(conflict)’은 본래 ‘갈등’으로도 해석할 수 있잖아요. 단순히 매체적 결합뿐만 아니라 내적인 영역에서의, 개인과 개인 간의 갈등도 존재할 것이고, 관람자가 작품을 봤을 때도 자기 안에서 어떤 갈등이 생길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런 것들이 몽타쥬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익숙하면서도 낯선 서사가 열리게 되고, 이를 통해 관람자로 하여금 작품을 다층적이면서 다각적인 측면에서 감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5. 앞선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관람자의 몰입을 자주 강조하셨는데요. 기획 의도에서 밝히신 새로운 담론의 서술화, 작품과 관람자 간의 상호작용과 몰입. 이를 통해 전달하고 했던 전시의 전반적인 주제나 의미에 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형식적으로 의도한 것은 충돌의 몽타쥬로서 서로 다른 매체가 하나의 점처럼 느껴지도록 만드는 거였어요. 그렇게 했을 때 관람자는 어떤 것을 얻어갈 수 있을까를 질문하신 거라면, 첫 번째는 범진용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현실과 우리의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1막에서 반군에 관한 얘기가 나오는데요. 그런 메시지가 지금의 정치적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이런 상황에서 그럼 과연 내가 반군인가, 이 현실은 디스토피아인가, 우리가 저항하는 대상은 어떤 존재인가 등의 질문을 할 수 있겠죠. 2막의 경우에는 그러한 갈등들을 토대로 ‘내가 세상을 초현실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인가’하는 문제를 다뤄요. 내레이션과 더불어 그림을 보며, ‘이것은 무언인가’, ‘인간 사고의 체계는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고민하게 될 것이고, 그러다가 3막에 들어왔을 때는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할 수 없는, 자연 앞에서 초라해지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발견하게 돼요. 마지막에 이르러서 다시 인물로, 결국 개인이 우주의 중심으로 귀결되는 과정, 그 여정을 담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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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의 몽타쥬, 강렬함을 넘어》 1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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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의 몽타쥬, 강렬함을 넘어》 2막
이런 과정을 느끼려면 몰입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적인 것을 포함해서 여러 부분이 작품과 닿아있어야 관람자 안에서 카타르시스던, 정서적 공감이던 생길 수 있는 거죠. 그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현대미술은 단순한 미적 추구가 아니다. 사유해야 한다. 침잠해야 한다. 그런데 급변하는 뉴미디어 환경(유튜브/SNS)에 놓인 일반인들이 과연 미술작품을 침잠을 통해 사유하면서 감상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어요. 간단히 말해 재미없고 지루한 것들 계속 볼 수 있는 세상인가 싶어요. 숏츠나 릴스 같은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많이 접하게 되고, 그로 인해 100분짜리 영화 보기도 버겁죠.
그러한 맥락에서 기존의 형식적인 것들에서 벗어나 다른 것들을 만들고, 그것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봐요. 사실 그림 하나, 음악 하나가 몰입을 유도할 수 있는 게 제일 좋죠. 그리고 그 몰입의 순간에 다다랐을 때, 내가 공감한 무언가가 있을 때 우리는 저절로 침잠하고 사유하게 되고 진짜 좋은 예술 작품을 감상했다고 이야기할 텐데 그런 작업을 만나기가 쉽지 않죠.


6. 전시 중 공간음으로 사운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곳과 헤드셋을 사용해야 하는 곳이 나뉘어져 있는데, 2막의 경우 1막과 같이 내레이션 중심의 사운드인데도 불구하고 구태여 헤드셋을 쓰도록 유도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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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의 몽타쥬, 강렬함을 넘어》 2막
관람자의 동선을 생각해서 분명하게 몰입해야 하는 순간과 조금 느슨하게 빠지는 순간의 강약 조절을 시도했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아요. 헤드셋을 사용하는 것과 공간음으로 사운드를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인상을 주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저나 진상태 작가님이 여타의 경험을 통해 설계했다고 보시면 될 거예요. 진상태 작가님이 사운드를 작곡하실 때, 전체를 다 같이 들어도 어울리도록 만들어두셨어요. 그래서 서로 부딪히지 않는 형태가 돼요.
3차원의 공간 안에 사운드까지 들어왔을 때를 미리 계산하는데요. 그러한 것들을 고려하는 입장에서 지금 예술발전소의 사운드 구현 환경은 좋지 않았는데, 그에 맞춘 최선의 결과물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조건과 여건이라는 게 존재해요. 작가는 끊임없이 조건을 만들어요. 그런데 여건이 안 갖춰진단 말이에요. 그러면 조건을 수정하거나 여건을 만들어야죠. 이런 과정은 눈에 띄지 않는 영역이라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쉽게 지나치게 되는데, 창작자로서는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에요.


7. 전시장에 다가선 관람자의 위치에 반응하는 사운드, 3막에서 작품에 관람자의 행위가 반영되는 부분 등에서 분명 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상호작용이 나타나기는 하나, 전시 공간이, 그리고 조명 장치가 관람자의 멈춤과 이동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확한 지적이고요. 그 부분이 어떤 ‘의도’로 받아들여질 때가 있고, ‘제한’으로 여겨질 때도 있는데요. 여러분이 게임을 한다고 생각해 볼게요. 게임 중 벽이 존재하고 그걸 뚫고 지나갈 수 없는 경우에, 그럼 그것은 뭐라고 정의할 수 있나요? 그런 것들은 설계와 디자인의 영역인데요. 개인적인 편차가 있겠으나 평균을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사실 1막의 경우 3분 50초 정도가 제가 생각했던 적정 런닝타임이었어요. 그랬으면 아마 자연스럽게 흘러갔을 텐데 실제로는 그것보다 한 1분 정도가 길어요. ‘멈춤과 이동’이라는 측면에서 딱 그만큼이 불편하지 않았나 싶어요. 하지만 그 부분은 전수조사를 하지 않는 이상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라 생각해요. 그런데 진상태 작가님의 다른 의견이 있기도 했고, 다른 관람자 중에는 그 부분을 온전히 듣고 싶은 분들도 있다는 가정하에 여러 논의 후 그렇게 결정되었어요.
사운드를 구축하는 작업을 드로잉으로 생각해 봤을 때, 단색을 쓰는 것과 세 가지 색을 쓰는 건 완전히 다른 접근과 방법이 필요하잖아요. 이처럼 사운드 채널이나 효과가 추가될 때마다 여백도 남겨줘야 하고 관람자의 위치도 계산해야겠죠. 조명을 컨트롤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그림을 그릴 때 관람자의 시점 변화를 생각하잖아요. 범진용 작가님의 작업과 내러티브를 접하면, 왜 이 그림에 인물 배치가 이렇게 되는지가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시선이 닿는 위치를 고려하고, 관람자들이 내러티브의 흐름과 시점의 이동을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게끔 사운드와 조명을 컨트롤했어요.


8. 작가님이 작업을 기획하실 때, 의미와 전략 중 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무엇인가요. 둘은 분명 공명하는 개념이기는 하나 작품이 내포한, 혹은 지향하는 의미와 이를 드러내는 전략 중 더 고민하고 신경 쓰는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건 지금 말씀해 주신 것처럼 공명하는 개념일 텐데요. 최초의 아이디어 단계에서는 여러 개 중 하나를 고르기 위해 노력하고, 그 이후에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그것에 맞춰서 공을 들이죠. 영화의 작업 방법에 비유하자면, 프리 프로덕션(시나리오 및 콘티 등 제작 준비) 단계에서 ‘의미’를 고민하는 거고, 이후 ‘전략’은 프로적션과 포스트 프로덕션(촬영과 편집) 단계를 거치면서 만들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글을 쓰더라도 같잖아요. 어떤 개념을 잡고 아이디어가 생겼을 때, 아이디어만 좋다고 좋은 글이 나오지 않잖아요. 후의 과정에서 고민을 많이 해야 하고, 또 그렇다고 그 과정만 있다고 글이 좋아지진 않잖아요? 결국 ‘선택과 집중’이 문제네요.


9.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람자가 멈춰 서게 되는 여러 지점과 전시장 내의 면면들이 있는데.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혹은 가장 의도대로 잘 구현된 부분은 어떤 부분일까요.

개인적인 영역인 것 같긴 한데, 제가 마지막 부분이 좋다고 느낀 건 그 그림(범진용, < 나옹 >, 2022)을 좋아해서 그렇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그림과 사운드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 같아서요. 1막의 경우에는 시작 부분에 관람자가 몰입할 수 있게끔 수정을 많이 거쳐서 좋았고... 아쉬운 것밖에 생각이 잘 안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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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진용, < 나옹 >, 130×163cm, 2022
《충돌의 몽타쥬, 강렬함을 넘어》 3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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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토, PATHO- 》(2024, 문래예술공장) 포스터, 전시 전경
작년 여름에 했던 개인전이 생각나네요. 이런저런 상황들이나 공간이 잘 맞았고요. 전시 장소가 극장이었어요. 그래서 무대 조명을 컨트롤 할 수 있었고, 사운드도 전시장과 달리 분명하게 잘 들려서 덕분에 관람자가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어요. 그때를 되돌아보면, 관람자가 혼자 들어가서 최소 20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 정도 계셨어요. 의자도 없는 공간에서 긴 시간동안 작품이 관람자를 머물게 하는 건 쉽지 않거든요. 관람자가 끊임없이 작업물과 상호작용 하면서 때로는 자기 경험을 내려놓고 들리는 대사와 조명, 시각적인 장치와 호흡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그 환경이 제가 생각한 대로 구성되었다는 거. 아쉬운 점은 관람자가 더 많이 와서 봤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되지 못한 부분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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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서, 과연 전시장에서 그렇게 몰입하여 작품을 감상하는 경우가 많이 있나 스스로 질문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이번 전시는 유의미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범진용, 진상태 작가님의 훌륭한 작업이 하나의 구성안에서 충돌하고 갈등하며 적절하게 몽타쥬 되고, 어울렸기 때문에 잘되지 않았나 싶어요. 무엇보다도 범진용 작가님의 작업이 드러내는 세계관, 그 기저에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주요했고, 그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도록 저나 진상태 작가님이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Interviewer_손지영(KNOT:)

박성준 @neueva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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