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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록, 기억의 편린, 생경한 장면
범진용
1. 안녕하세요 작가님,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버려진 장소 풍경과 주변 인물들을 회화로 작업하고 있는 범진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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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 일기 드로잉 >, 140×830cm, 2014
2. 작가님의 이전 작업은 꿈의 내용을 기록하고, 이를 각색하여 재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꿈속의 장면이나 사건을 기록하게 된 시점 혹은 이유에 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입대 전에 특이한 꿈을 꾸게 되었고, 그 뒤로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작업을 할 때 소스로 쓰기 위한 목적도 있었어요.

“건물은 높고 뾰족하며 내부는 아치형인 문을 열고 들어간다.
건물 내부의 한 가운데는 강물이 흐른다.
강물은 앞문에서 뒷문까지 연결 돼있다.
곤도라를 타고 강물을 따라 천천히 나아간다. 
양옆은 초가 밝혀져 있고 각종 종교들의 신들이 조각상으로 계단마다 놓여있으며 촛농이 두껍게 쌓여있다. 
은은한 촛불과 촛불에 비치는 흔들리는 조각상들의 그림자들 덕분에 분위기는 몽환적이다.
뒷문까지 다다를 때, 문은 자동으로 열린다.
 밖에 짙게 깔린 푸르스름한 안개를 헤치고 노를 젓는다. 어렴풋이 저 멀리에 있는 산이 보인다.”

범진용, 「19980218 그림의 시작」, 1998


3. 그렇다면 꿈 일기, 즉 ‘무의식의 기록’으로부터 풍경이나 주변 인물과 같은 ‘일상적 경험’으로 작품의 주제나 색채가 변화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불면증에 걸려 작업실 주변을 산책하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로 인적인 드문 공원과 같은 곳이었고, 버려진 장소에서 자라는 풀들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게 시리즈가 되었습니다. 인물 작업의 경우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시작되었어요. 버려진 장소의 풀과 풍경, 인물 작업의 공통점은 평범하고 사소한 것들의 특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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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 >, 227×870c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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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 >, 410×661cm, 2017
4. 작가님이 일상을 기록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어떻게 정의하고 계신지가 궁금합니다. 가령, 이는 작가님의 개인적 경험을 더욱 선명하게 구체화하여 드러내는 과정인가요, 아니면 다양한 가능성을 향해 그 의미를 확장해 가는 과정인가요.

기록에 기반하여 다양한 가능성을 향해 의미를 확장해 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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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옹 >, 130×163cm, 2022
5. 그러한 과정 중 작가님은 ‘장면의 재현’과 ‘심상의 표현’ 중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작업을 이어가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스케치 단계에서는 기본적으로 촬영한 사진을 참고합니다. 어느 단계가 오면 우연적인 붓질, 색감이 개입되고 재현과 심상의 표현이 겹치고 겹쳐서 또 다른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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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의 몽타쥬, 강렬함을 넘어》 전시 전경
6. 대구예술발전소에서 진행 중인 《충돌의 몽타쥬, 강렬함을 넘어》에 관해 여쭤보려고 합니다. 일반적인 그룹전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협업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본 전시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회화 전시를 관람하는 중에 ‘그림이 음악으로, 작가 노트가 대사로 나온다면 어떨까’하는 생각과 함께, 단순히 이 같은 시도가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7. 범진용 작가님과 진상태 작가님, 박성준 작가님이 각각 상이한 장르의 작업을 전개하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이번에 하나의 공간을 구성하며 주요하게 고려했던 부분이 있을까요?

각기 다른 매체를 사용하다 보니, 이러한 부분들이 얼마나 잘 어우러질 수 있을지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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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의 몽타쥬, 강렬함을 넘어》 3막 부분
8. 본 전시와 같이 회화 작업에 여러 환경적 조건이 부여되는 것이 작품에 관한 해석의 자율성을 해친다고 여기지는 않는지, 혹은 어떠한 다른 효과가 있다고 여기시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대사와 조명, 음악의 분위기가 그림에 관한 해석을 주도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환경적인 요인으로 달리 해석될 수 있다 하더라도, 본질적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이번 전시는 작품에 대한 다른 작가님들의 해석들이 개입된 것이었고, 그것 자체가 흥미로웠습니다.


9. 세 분의 협업을 ‘충돌의 몽타쥬’라고 정의하셨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충돌’은 어떠한 의미인가요?

어떤 새로운 형태의 생김새가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10. 마지막으로, 본 전시의 1막에서 3막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작가님의 작업 연대기와 연관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4막이라고 해야 할까요? 최근에는 어떤 주제의 작업을 이어가고 계시나요.

꿈, 풍경, 인물 등의 작업을 진행해 나가면서 최근엔 이것들이 통합된 어떤 추상적인 이미지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용이나 의미를 배제한 회화적인 것 또는 물감의 물성과 필력 등 캔버스 안에서의 구성과 질서, 우연적인 표현의 어디쯤을 다루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Interviewer_손지영(KNOT:)

범진용 @beomjy
노트(KNOT:) @knot_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