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미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시나요?
일단 그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중학교 때부터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예고에 진학하고 자연스럽게 미대에 갔어요. 3학년 때쯤부터 학교 시스템상 3~4학년이 같이 쓰는 실기실에서 생활했는데, 그때 선배들을 보고 ‘나도 저런 멋있는 작업 해보고 싶다.’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좀 더 열심히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전시도 그때 엄청 찾아보고 다녔죠. 그전까지 저는 인물을 그렸거든요. 인물을 그리다가 추상으로 작업을 전환하면서 교수님과 얘기를 많이 하고 선배들과도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작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4학년 때쯤 진로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서 미학미술사학 대학원을 갈지, 작가 생활을 할지 고민하다가 뭔가 작업을 더 해보고 싶고 지금 이 상태로 종결되기는 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고 회화과 대학원으로 가면서 운 좋게 일찍 개인전을 하게 돼서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어떠한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순간순간의 선택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지 않나 싶어요.
3. 초기의 인물화 작업에 관해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인물의 순간적인 표정을 많이 촬영하고 그걸 작업으로 풀어냈어요. 순간적인 감정에 관해 설명하려고 보니까 텍스트 자체가 너무 추상적이고, 이것을 시각적으로도 보여주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제가 그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 테크닉적으로도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러다가 구상적인 형태에 얽매일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업이 추상으로 바뀌었는데, 추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도 구상으로 작업하던 습관이 남아있다 보니까 그걸 벗어내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리고 그랬던 것 같아요.
4.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있나요?
제 작업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빌 비올라(Bill Viola, 1951- )의 영상 작업들을 되게 좋아합니다. 그 작업을 보면서 왜 사람들이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의 작업을 보고 실신한다.’ 이런 말을 하는지 딱 느꼈던 것 같아요. 작업 보면 영상을 천천히 그리고 거대하게 보여줘서 압도되는 게 좀 있어요. 약간 스케일 크게 작업하는 걸 좋아하는 건가 싶기도 하네요. 헤르난 바스(Hernan Bas, 1978- ) 같은 작가들도 테크닉적으로 되게 재밌다고 생각을 많이 해서 찾아보는 편이기도 합니다.
5. 작가님 작업에 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 작업은 제가 경험한 공간에서 시작되는데요. 그 공간을 다시 추상적인 형태로 재현하는 작업입니다. 소재를 선택할 때는 생경한 감정이라든가 순간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들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그런 부분이 작업을 할 때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을 해서 요즘은 작업 과정에서 결여된 부분이라든가 결핍된 부분을 보완해 나가는 느낌으로 하고 있어요. 일상에서도 내가 발견할 수 있는 결여된 순간들이 뭐가 있을까 하고 자료를 찾아보기도 합니다. 공간을 구성하는 것에 있어서는 추상 회화에서는 다 보여줄 수 없었던 것들을 공간으로 끄집어내는 흐름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