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 휴먼버드 시리즈 >와 < 이름을 잃어버린 공간 >의 작가 노트를 보며 각 작업에서 ‘새’가 의미하는 바가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선 작업에서 새는 현대 기술문명의 발전에서 도태된 혹은 소외된 인간에 비유되었는데, 최근 작업에서는 비인간 타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더라고요.
맞아요. ‘새’가 지시하는 바를 보다 확장된 의미로 가지고 가고자 했는데요. < 휴먼버드 시리즈 >에서 새의 의미는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연결됩니다. 저는 새를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데, 어느 날 새벽에 큰 사거리에서 까마귀가 제일 높은 가로등에 앉아 있는 걸 봤어요. 거기 나무들도 되게 많았는데 거기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좀 의아하더라고요. ‘쟤들이 저곳을 선택해서 앉은 건가? 본능적으로 주변을 내려다보기 좋은 가장 높은 곳이라 저기 있나?’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새가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분들의 삶의 방식은 지금 우리 세대와는 다른 것 같아요. 어떤 부분에서는 도태되고 있죠. 이렇게 소외되어 가는 사람들에 관해 생각해 보니 인간 간,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인간 중심적 사고에 관해 고민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의미의 확장이 있었던 것 같아요.
5-3. 우리가 인간에게 불필요한 어떤 것을 배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장치는 되게 많잖아요. 그 중에서도 ‘버드가드’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이어가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해당 작업에서 버드가드는 일종의 경계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요. 투명한 소재를 사용한 ‘경계 지음’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질문드립니다.
사실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따로 언급한 적은 없는데요. 고속도로나 아파트 단지에 조류 충돌 방지 필름이 붙어있는 벽이 있잖아요. 투명한 벽에 맹금류 스티커를 붙여놓았는데, 사실 그게 크게 유효하지 않다고 해요. 지금은 점자나 십자 모양을 표시해서 새들이 벽을 인지하고 피할 수 있게 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많이 죽죠. 가까이 가서 보면 새들이 부딪힌 자국이 투병한 벽에 그대로 남아 있고 주변에 죽은 새들의 사체가 널려있어요.
거기에서 어떤 문제의식을 느끼고 출발했던 것 같아요. 새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럴듯한 장치를 마련해 둔 것처럼 말하곤 하는데, 사실 인간의 기준에서 미관상 보기 좋으라고 투명하게 만드는 거잖아요. 투명함이 가진 이중성에 관해서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안이 보이지만 막혀있는 것이니까요. 그때부터 투명한 장애물에 관해 찾아보기 시작했고, 투명한 버드가드로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6. 인간과 비인간 타자의 대립이라는 작가의 문제의식과 < 이름을 잃어버린 공간 >이라는 작품의 제목은 어떠한 의미에서 연결되는 걸까요.
저는 ‘이름’이 사물에 어떠한 힘을 부여한다고 생각해요. 생명이든, 사물이든, 공간이든 부르는 명칭이 있다는 건 어떠한 의미가 부여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전시실 내의 저 공간들은 어떤 누구의 공간인지, 누구를 위한 공간인지 특정 짓기 어려워요.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없네.’라는 생각에 이름을 잃어버린 공간이라 부르게 되었어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게, 자연생태공원이나 OO 도심공원과 같은 이름을 붙인 곳 있잖아요. 그런 곳을 보면 마치 그들(동, 식물)을 위한 어떤 정책이나 방안을 마련해준 듯 보이지만 정말 그 공간이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것인지, 그게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렇다 보니 그러한 곳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잃어버렸다는 것은 원래 있었다는 사실을 전제하잖아요. 사실은 모두의 공간이었던 거죠. 우리 집, 새집이나 아파트, 공원은 각각 ‘누구의’ 혹은 ‘어떠한’ 공간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았을 뿐, 애초에 ‘모든 공간은 모두의 공간이었다.’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밀어내기, 경계 짓기가 어떠한 명칭을 붙였을 뿐이죠.
7. 작가님의 작가 노트를 보면서, 크게 세 가지 정도의 대립 쌍을 염두해 두고 있다고 생각 했어요. 인간 대 인간, 인간 대 자연(동물), 인간 대 비인간 타자가 그것인데요. 여기에 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게 제가 작업을 진행하며 고려했던 순서대로 설명이 된 것 같아요. 가장 마지막에 언급된 대립 관계가 앞선 부분들을 다 포함한 논의가 될 텐데요.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그런 부분들에 관해 고민하다 보니까 보다 넓은 영역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8.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어떻게 되시나요.
앞으로 할 작업의 주제보다는 방식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데요. 사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은 굉장히 개인적인 부분에서 출발해요. 그런데 저의 사소한 일상과 생각을 작업으로 가지고 갈 때, 내 일기보다는 다수가 받아들이기 쉬운 보다 넓은 영역의 문제를 다루게 되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그런 것보다 제가 작가를 시작하게 된 계기처럼, 좀 더 나의 개인적인 느낌이나 경험에 집중하면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사실 인간과 자연의 대립과 같은 문제를 평소에 계속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저의 문제의식은 지극히 단순하고 사적인 영역에서 비롯되거든요. 여러 사회적 사건 혹은 현상들이 제 개인의 영역까지 영향을 미치고 어떤 부분에서 제가 피해를 보거나 불편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잖아요. 그러면 이에 관해 고민하게 되고, 자연스레 다수가 느끼고 있는 어떠한 문제의식에 가까워지는 거죠. 제가 생각하는 부분이 어떠한 거대 담론에 포함될 수 있을 뿐이지 인류가 직면한 굵직한 문제들을 고민하면서 이러한 경험들을 상기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은 작업의 시작점이 되는 좀 더 개인적인 부분을 재밌게 풀어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