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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_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The Wretched of the Earth)
김미련(미디어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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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님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김미련이라고 합니다. 저는 1969년에 안동에서 태어나서 20년, 대구로 대학교를 들어와서 1992년도에 대학을 졸업하고 대구에서 9년을 지냈습니다. 그때는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이죠. 우리나라 1987-1988년도가 굉장히 한국 현대사에서 학생운동이 물밀듯이 막 터져 나오던 시기라서, 저도 3학년 때부터 학생운동을 했죠. 그다음에 졸업하고는 민중미술 활동을 했었고 노동 미술을 중심으로 활동을 했었죠. 노동 현장, 파업 현장 이런 쪽으로 많이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1989-1990년도 냉전 시기를 지나면서 전 세계가 신자유주의화 되고, 세계화되면서 작업에 대한 고민을 좀 많이 했죠. 프로파간다 중심의 작업을 하다 보니까 제 개인의 작업에 대한 갈증이 굉장히 많았어요. 개인이 없는 공동체 미술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거기에 대한 갈증이 많아서 그 환경을 좀 바꿔봐야 하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서울보다는 제가 존경해 왔던 작가들이 집중된 독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나 또 나중에 제 교수가 될 A.R. 펭크(Penck), 요르그 임멘도르프(Jorg Immendorf)와 같이 사회정치적인 맥락을 가지고 작업하는, 그런 작가들이 있는 곳으로 환경을 좀 바꿔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독일에서 10년을 지내다가 다시 대구로 돌아온 지 15년째 되네요.
 
1-1 개인이 없는 공동체 미술에 대한 어떤 회의감이 드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 회의감도 있고 갈증이 있었죠. 갈증이. 그러니까 작가라는 사람들은 제가 이걸 평준화할 순 없지만 자유라는 게 있잖아요. 리버럴(liberal)에 대한 굉장히 큰 갈증도 있고, 1980년도라는 그 격동기에 대학 생활을 보냈다 보니, 거대 집단과 사회적 변화의 격동기에서 집단이 옭아매는 구속에서 자유로운 개인에 대한 갈증을 풀 기회가 없었던 거죠. 스터디를 만들고 이제 리더가 되면 자기 개인이 없잖아요. 제가 독일에서 그걸 깨달았어요. 우리나라는 개인이 죽은 집단성이 강한 거예요. 개인이 살아있는 공동체 사회를 추구해야 하는데 말이죠. 저는 그게 민주주의라고 생각해요. 쉽지 않은 거죠.
 
2. 미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시나요?

- 제가 처음부터 사회적 어쩌고 이런 이야기를 한 건 아닙니다. 저는 그냥 그림을 너무 좋아했죠. 안동의 시골동네, 그 조그만 마을에서 막내로 자랐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놀이가 별로 없었어요. 시골에 책도 그렇게 많지 않았고. 그림을 잘 그렸죠. 그러니까 이제 선생님들이 너는 홍대 가야 되지 않겠냐? 이렇게 말하는 거죠. 그걸 또 저는 철석까지 믿고 '나 정말 잘 그리나보다,' 이렇게 생각했고, 그림 그리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지요. 할 일이 없어서 책받침에 피비 캣츠(Phoebe Cates), 소피 마르소(Sophie Marceau)이런 사람을 책받침에 그대로 베껴서 친구들에게 선물하기도 했죠. 제가 그 외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취미였어요.
 
3.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있으실까요?

- 그때그때 많이 바뀌었죠. 처음에는 임멘도르프(Jörg Immendorff)를 좋아했죠. 굉장히 사회 비판적인 작업을 했던 독일 신표현주의 작가입니다. 선재 미술관에서 1996년도 즈음 개인전을 한번 했었는데, 그 전시를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그 사람이 그렸던 독일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들, 사회의 정치적인 부조리, 이런 것들을 상징적인 방법으로 패러디했었는데 굉장히 충격을 받았죠. 그림도 엄청 컸어요. 막 5-6m 되는 대작들에 압도당했죠. 그 후에는 요셉 보이스를 너무나 동경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 카셀에서 나무를 심은 그 프로젝트 제목을 우리는 〈7천 그루의 떡갈나무〉라고 알고 있는데 그 뒤에 더 추가된 내용이 있죠. 도시행정 대신 도시 숲 조성(Stadtverwaldung statt Stadtverwaltung)이라는. 독일어 원제로는 그 라임이 정말 끝내줍니다. 그런 걸 구체적으로 보면서 엄청 감동했죠.
4. 이번 인터뷰는 작가님의 2022년도 작품 < 안개의 그림자 >와 < 풍경의 좌표 >를 중심으로 진행하겠습니다. < 안개의 그림자 >와 < 풍경의 좌표 >가 어떤 작품인지 간단히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 네, 이 두 개의 작품은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됩니다. 작업을 하게 된 이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우리 가족의 서사에서 나온 아주 사적인 이야기를 남북 분단이 되어 있는 한국의 보편적인 역사와 연결해서 제 개인의 일기장이 아니고 보편적으로 확장하려는 의도로 작업을 했습니다. 두 번째로 지금 “대구·경북이 보수의 아성이다.”라고 이야기되고 있는데, 사실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2.28 대구학생시위 - 민주화운동이나 10월 항쟁이 있었죠. 이런 맥락 속에서 보면 대구가 한국의 모스크바라고 불릴 정도로 진보적인 역사가 있었음에도 왜 극우화되었을까에 대한 원인을 찾고자 하는 이유에서 작업을 했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아주 개인적인 염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가 되게 연세가 많으세요. 87세 이렇게 되는데, 아버지가 할아버지에 대해서 원망이 되게 많아요. 왜냐면 연좌제로 인해 가족사에 빨간 줄을 긋게 한 당사자이기 때문에, 그리고 또 가족을 버리고 월북하셨기 때문에 원망이 되게 많습니다. 6남매의 맏이로서 당장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엄청 고생을 하셨거든요. 그다음에 또 하나는 그럼으로써 나오는 그 스트레스를 가족 내부의 폭력으로 푸신 거예요. 저는 엄마를 폭력적으로 대하는 모습을 다 보고 자랐죠. 그래서 저는 아버지를 너무너무 싫어한 거예요. 미워한 거예요. 그 속에 얽히고 얽힌 원망과 아버지가 할아버지에 대한 엄청난 원망. 이게 세 번째 이유, 사실은 가장 제가 풀고 싶은, 아버지를 용서하고 싶은 이유가 있었던 거죠. 왜냐하면 엄마를 너무나 가정폭력으로 학대하고 저는 그걸 다 보고 자라고. 그것이 저에게는 성장과정에서 트라우마로 남게 되고 가부장적 억압에 대한 저항의식이 생겨났지요. 가정폭력이 DNA에 있는 게 아니고,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 고통을 집안에서 풀 수밖에 없었을까하는 생각을 인터뷰를 하면서 자세하게 알게 되었지요. 저는 그걸 몰랐죠. 어렸을 때는. 이 이유가 가장 컸어요. 저는 아버지를 어떻게든 돌아가시기 전에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암 투병을 하게 되면서 작업 속도가 빨라지게 되었죠. 아버지보다 내가 먼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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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서울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기억을 걷는 시간》 전시에 설치된 < 안개의 그림자 >의 경우 한쪽에는 작가님 아버지의 인터뷰 영상이, 다른 한쪽에는 커튼이 설치되어 그 안에서 관객들이 VR체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공간을 가르는 커튼의 의미와 < 안개의 그림자 >를 3D VR영상으로 제작한 이유가 있을까요?
 
- VR을 먼저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VR은 가상현실이죠. 작품 구성이 아버지의 인터뷰를 통해서 할아버지가 1951년에 어떻게 월북을 했는가를 초현실적인 3D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한 거거든요. 그래서 실제가 아니죠. 실제가 아니기 때문에 VR을 장착했을 때 관객들이 저의 이야기를 더 몰입해서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 장비를 쓴 거죠. 저의 이야기이지만 관객이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아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게 한 거죠. 그다음에 커튼을 사용한 이유는 가상과 현실을 분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작품이 설치되어 있는 공간에 들어가면 오른쪽에는 VR 장비가 설치되어 있고 왼쪽에는 아버지 인터뷰가 다큐멘터리로 나온단 말이에요. 이게 현실이죠. 오른쪽에는 제가 만들어낸 가상현실이고. 커튼으로 그 경계를 만든 거죠. 커튼 안에는 안개의 그림자의 중심적인 시구 “모든 경계는 가시거리 제로의 허상이고, 모든 한계선은 충돌선이자 오리무중의 안개였다.”가 적혀있죠.
 
6. 이 작업의 제목은 < 안개의 그림자 >인데요. 안개는 현실을 흐리게 보게 하고, 그림자는 실재의 음영이라 생각됩니다. 사건을 다루는 작가님의 방법론과 제목이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고 느껴지는데 이에 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 안개는 그림자가 거의 없죠. 구름은 그림자가 있지만, 안개는 덩어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림자가 없잖아요. 이렇게 보면 제목이 아주 모순적이죠. 이 지점이 앞에서 말한 이데올로기의 문제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남과 북으로 나누어진 정권들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국가권력을 독점하고 자기 안위를 위해서, 남북한 분단 이데올로기를 가져다 쓰고 있잖아요. 분단 이데올로기로 장막 쳐진 정치적 상황이 마치 안개에 가려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고, 안개로 가려짐에 의해서 발생하는 사건들, 예를 들어 제가 아버지에게 들었던 할아버지의 월북 이야기와 같은, 오빠들에게 들었던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가정폭력 등 이러한 파장으로 파생된 것들이 그림자가 되는 거죠.
 
7. 과거의 어떤 것(사건, 경험)을 다루는 작업은 일종의 기념비적 성격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념비는 1차적으로 기억을 위한 장치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망각이나 상기를 위한 수단으로도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세 가지 모두 조금의 의미의 격차가 있을 텐데요. 작가님이 과거의 자취를 남기고 공유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 기억 속에는 과거도 담겨 있지만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시점과 방향이 잠재적으로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을 공유해도 사람이 기억하는 건 다 다르죠. 그게 어떤 관점을 가지고 기억을 리뉴얼 하느냐에 따라서 발굴된 역사가 기술되는 게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억은 망각의 의미라기보다는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투쟁을 통해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안개의 그림자 같은 것들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또한 모순을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미래를 제대로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하나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이 우리나라와 같이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가진 국가와 민족에 대해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The Wretched of the Earth, 1961년)’에 서술한 내용이 떠오르는데요. “... 식민주의는 단순히 지배받는 나라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지배를 강요하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식민주의는 단지 사람들을 억누르고 토착민의 두뇌를 모든 형태와 내용에서 비워내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일종의 비열한 논리에 의해 억압받는 사람들의 과거로 돌아가 그것을 왜곡하고, 변형시키고, 파괴한다."
 
8. 작가님의 또 다른 작업인 < 풍경의 좌표 >에서 식물을 스캐노그래피*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 네, 스캐노그래피는 스캐너 위에 식물을 스캔한 겁니다. 제가 2009년도부터 이 방식을 이용해서 작업을 해 왔죠. 여기서 풍경의 좌표는 사람도 주민등록증이 있는 것처럼 땅도 자기만의 위·경도가 있잖아요. 그걸 찍어가면서 제가 지도를 그리고 그 장소에 있는 풀을 스캐닝한 거죠. 그래서 풍경의 좌표는 할아버지가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내앞마을에서부터 시작되는 월북 경로를 추측해서 그 경로에 있는 풀을 스캔한 거죠. 인간의 발길이 지나간 땅에는 73년의 세월 동안 전쟁과 반목의 흔적이 남아 있겠지만, 내가 바라보는 헛헛한 풍경 속의 식물들은 스스로 역사가 되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9. 작가님의 이 두 작업은, 작가님 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작가님 자신에 대한 아카이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미시적인 아카이브가 현대미술에서 가지는 의미가 궁금합니다.
 
- 아카이브 아트가 가지는 어떤 의미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아카이브도 어떠한 방향과 관점에서 정렬하고 수집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죠. 이것들이 개인의 미시 서사에서 나오는 거지만 모이면 엄청난 증거물이 되는 거잖아요. 이러한 아카이브는 어떻게 한 가족이 역사적인 사건, 즉 국가 폭력에 의해서 세대를 이어 검열과 통제를 당하고, 그것들이 모여서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를 형성하고, 그 여파로 인해서 자손들이 고통을 받아 왔는지, 증언하는 어떤 단서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아카이브를 통해서 수집된 개별 기록들이 모여 보편성으로 확장된 아카이브를 또 구축할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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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제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시거나 아니면 어떤 활동을 조금 더 이어나가고 싶으신지 여쭤 봐도 될까요?
 
- 지금 두 개의 프로젝트를 지금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 그림자노동 In/Visible Work-er > 프로젝트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상적인 ‘노동’의 이면에 드러나지 않는 ‘그림자 노동’의 구조와 가치를 관객참여의 형식과 다학제간 협업으로 풀어내는 프로젝트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탈식민주의의 관점에서 지역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프로젝트로 미술을 통해 대구의 10월 항쟁과 제주 4.3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구와 제주, 광주 청년미술가들의 교류와 연대를 통해 젊은 시각에서의 ‘역사 마주하기’ 프로젝트입니다.
 
11.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실까요?
 
- 제가 뱉어낸 말만큼 그 실천을 못 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부끄럽기도 하네요. 이 나이 되도록 해놓은 게 없어서 특히 젊은 청년들에게 부끄러운 게 많죠. 하지만 예술 노동은 그 자체로 목적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순수함 때문에 사실은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작업들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꼭 사회적인 맥락의 작업을 하지 않더라도 작업하는 모든 작가들은 그 에너지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죠.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캐노그래피(Scanography)는 스캔(scan)과 포토그래피(photography)의 합성어로, CCD(Charge-coupled device, 전하 결합 소자) 배열 장치가 있는 사진 스캐너를 사용하여 물체의 디지털화된 이미지를 캡처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Interviewer_박성호(KNOT:)

김미련 @miryeon_kim
노트(KNOT:) @knot_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