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구타이미술전(具体美術展)》(1956년 10월 11일-17일)에 타나카는 〈전식인형-전기옷〉 과 드로잉 10여점(크레용)을 출품하고 전시장에서 작가 자신이 〈전식인형-전기옷〉을 착용하는 퍼포먼스를 실시하였다.
수백 개의 유색 전구와 형광등을 연결해 만든 〈전식인형-전기옷〉은 1950년대 일본의 급격 한 도시화, 소비주의, 그리고 전쟁의 트라우마라는 모순된 시대상을 작가의 신체를 통해 보여 준다. 당시 오사카와 도쿄 등 대도시들은 전쟁의 잿더미를 딛고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뒤덮이 고 있었으며 마쓰시타 등의 기업들이 전구와 가전제품을 쏟아내며 대중 소비사회를 이끌고 있 었다. 타나카가 화려한 네온사인 거리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이 전기옷은 기술 발전이 가져 온 전후 근대화의 환희와 폭발적인 도시 에너지의 분출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함의 이면에는 전후 일본인들의 깊은 공포가 숨어 있다. 〈전기옷〉은 시 각적으로 아름답지만 실제로는 작가의 생명을 위협할 만큼 위험한 오브제였다. 수백 개의 전 구와 형광등, 전선으로 이루어진 옷의 무게는 약 50kg에 달해 입는 것조차 버거웠으며 전원 을 켜는 순간 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또한 전선 하나만 합선되어도 작가가 즉사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천만한 상태였다. 작가 자신이 이러한 전기옷을 직접 몸에 입고 점멸시키는 퍼포먼스를 행한 것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를 겪은 지 불과 10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당시 일본 사회의 핵(원폭)에 대한 집단적 트라우마와도 맞닿아 있다.
작가가 밝힌 일차적인 영감은 오사카 거리의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과 약재상 거리의 제약회 사 광고판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제작된 1956년의 시대적 맥락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불과 11년이 지난 시점이었을 뿐만 아니라, 작 품 제작 직전인 1954년에는 ‘제5후쿠류마루(第五福竜丸)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고는 미국의 비키니섬 수소폭탄 실험으로 인해 일본 어선이 방사능 낙진 피해를 입고 선원이 사망한 사건 으로 당시 일본 사회는 전후 최대의 핵 공포와 반핵 운동으로 들끓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거대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전기 장치를 온몸에 휘감은 예술가의 모습은 당 시 일본 대중과 지식인들에게 단순한 ‘화려한 불빛’을 넘어 가공할 핵에너지와 방사능에 노출 된 인간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연상시켰다. 화려하게 빛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거대한 에너지 시스템 속에 놓인 인간의 신체는 기술 발전이 가져온 풍요와 그 이면에 자리한 파멸의 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타나카 아츠코가 이 눈부시고 위험한 빛의 장치 속에 자신의 나체(신체)를 직접 개입시켰다 는 점이 주목할 만한데 이는 통제 불가능한 기술적 에너지(핵·전쟁) 앞에 노출된 인간 존재의 불안과 취약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 큐레이터 폴 쉬멜 (Paul Schimmel, 1954-) 역시 이 작품이 지닌 위험천만한 물질성이 전후 일본이 겪은 파괴 적 에너지의 기억을 자극한다고 보았다. 그가 “구타이의 모든 작업 중에서도 이 전기옷 만큼 풍부한 은유로 가득 찬 작품은 없다”고 평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이 전 세계 미술 계에서 높이 평가받는 것은 미술에 접목된 테크놀로지뿐만 아니라, 1950년대 전후 일본 사회 가 마주했던 ‘전쟁의 폐허와 눈부신 재건’, ‘기술이 주는 풍요와 원폭이 남긴 파멸의 공포’라 는 시대적 모순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타나카 아츠코의 〈벨〉과 〈전식인형-전기옷〉은 단순히 새로운 재료와 기술을 활용한 실험적 작품에 그치지 않는다. 두 작품은 전후 일본 사회가 경험한 급격한 산업화와 기술 발전, 민주 주의의 확산 그리고 전쟁과 핵에 대한 불안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벨〉이 관객 참여를 통해 새로운 사회적 주체의 탄생을 보여주었다면, 〈전식인형-전기 옷〉은 기술이 제공하는 풍요와 그 이면의 위험성을 작가의 신체를 통해 드러냈다. 이처럼 작 가는 전기, 소리, 신체와 같은 비전통적 매체를 활용하여 전후 일본 사회의 복합적인 현실을 시각화하였으며 이는 전후 일본의 동시대성을 효과적으로 담아낸 행위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