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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카 아츠코 : <벨>과 <전기옷>에 투영된 동시대성
최정원
1950년대 전후의 일본은 사회적, 정치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던 시대였다. 당시 일본 미술계는 서구 문화와 미술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경과 전쟁의 기억이 복합적으로 반영되어 있었다. 화단의 주류는 관전(官展)을 중심으로 한 권위주의적 기성 화단, 전쟁 후의 어둡고 암울한 사회적 분위기를 비판적으로 담아낸 초현실주의 작품, 그리고 무거운 톤의 추상회화가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시대 문화와 예술을 향한 신세대 작가들의 반발 또한 존재했다. 

​그 선구적인 움직임 중 하나가 바로 1936년에 결성된 ‘신제작협회(신제작파협회에서 1951년 현재의 명칭으로 개칭함)’였다. 이노쿠마 겐이치로(猪熊弦一郞, 1902-1993), 고이소 료헤이(小磯良平, 1903-1988) 등 젊은 미술가들은 군국주의화되던 당시 사회와 관전의 권위주의에 정면으로 반발하며 순수한 예술적 자유를 추구했다. 이러한 신제작협회의 관서 지역 지부에서 활동하던 카나야마 아키라(金山明, 1924-2006), 무라카미 사부로(村上三郞, 1925-1996), 시라가 카즈오(白髮一雄, 1924-2008), 타나카 아츠코(田中敦子, 1932-2005)는 1952년 ‘제로그룹(0會)’을 결성하게 된다. ‘모든 예술작품은 무(0)에서 시작한다’는 이념 아래 모인 이들의 주된 활동은 각자 제작한 작품을 가져와 비평회를 여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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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다다이즘이 탄생한 것처럼 전쟁 이전에 없던 획기적인 미술을 열망하던 구타이 미술협회의 창립자 요시하라 지로(吉原治良, 1905-1972)는 일찍이 제로그룹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요시하라의 요청을 받은 시마모토 쇼조(嶋本昭三, 1928-2013)가 이들을 몇 번 방문하면서, 마침내 1955년 제로그룹의 핵심 멤버 4인이 구타이 그룹에 전격 가입하게 된다. 이들의 합류는 구타이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전까지 주로 추상표현주의 회화에 국한되어 있던 구타이의 작품 경향은 이들의 가입을 기점으로 행위, 물질, 환경, 테크놀로지로 급격히 확장되었고, 전 제로그룹 멤버들은 구타이의 중심축으로서 그룹의 초기 미술 활동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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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급변하던 일본 근현대 미술사의 한복판에서 타나카 아츠코는 몇 안 되는 여성 작가 중 한 명이다. 오사카 출신의 타나카는 1951년 교토 시립 미술전문학교(현 교토 시립예술대학)를 중퇴한 후 오사카시립미술관 부속 미술연구소에서 수학했다. 카나야마의 소개로 1952년 제로그룹의 창립 멤버가 된 타나카는 이후 1955년 구타이에 가입하며 본격적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타나카 아츠코의 많은 작품 중 흥미로운 건 〈벨(Bell)〉(1955)과 〈전식인형-전기옷(Electric Dress)〉(1956) 두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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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 〈벨(Bell)〉(1955)
먼저 사운드 인스톨레이션(설치) 작품인 〈벨〉은 제1회 《구타이미술전(具体美術展)》(1955)에서 선보인 것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근대적 전자기 시스템과 전후 일본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청각과 공간을 통해 탐구한 결과물이다. 전시장에 설치된 20개의 벨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순차적으로 울리게끔 설계된 이 작품은 당시 일본 사회를 급격하게 재편하던 공장의 기계음이나 기차 소리 같은 ‘근대적 소음 환경(Soundscape)’과 산업화의 기계적 제어 시스템을 전시장 내부로 끌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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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카는 《한여름 태양에 도전하는 모던아트 야외 실험전》에서 본인의 작품 바람에 연달아 펄럭이는 소리를 내는 〈핑크 인견지〉를 보며 〈벨〉제작의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카나야마는 〈벨〉이 스위치를 켜면 20개의 벨소리가 순차적으로 울리게 된다는 점에서 시한(時限)적 요소가 있다고 언급하였다. 또 그는 〈벨〉은 살아 움직이는 음향이라는 점, 경우에 따라 작품을 몇십 몇백 배까지도 연장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시간성과 공간성을 감상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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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야마 아키라가 상황에 따라 공간과 시간을 몇십, 몇백 배까지 확장할 수 있는, 살아 움직이는 음향이라 극찬한 이 구조는 한편으로 전후 일본 사회의 흥미로운 정치적 변화를 내포한다. 전쟁 이전 군국주의 일본에서 전기와 소리(사이렌, 전시 방송 등)는 국가가 대중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벨〉에서는 관객이 직접 스위치를 눌러 시스템을 작동시킨다. 이 참여형 구조는 관객의 자발적인 행위가 있어야만 완성된다. 이는 전체주의의 억압에서 벗어나 스스로 행동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전후 민주주의적 주체’로서 개인의 탄생을 예술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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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2] 〈전식인형-전기옷(Electric Dress)〉(1956)
제2회 《구타이미술전(具体美術展)》(1956년 10월 11일-17일)에 타나카는 〈전식인형-전기옷〉 과 드로잉 10여점(크레용)을 출품하고 전시장에서 작가 자신이 〈전식인형-전기옷〉을 착용하는 퍼포먼스를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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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개의 유색 전구와 형광등을 연결해 만든 〈전식인형-전기옷〉은 1950년대 일본의 급격 한 도시화, 소비주의, 그리고 전쟁의 트라우마라는 모순된 시대상을 작가의 신체를 통해 보여 준다. 당시 오사카와 도쿄 등 대도시들은 전쟁의 잿더미를 딛고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뒤덮이 고 있었으며 마쓰시타 등의 기업들이 전구와 가전제품을 쏟아내며 대중 소비사회를 이끌고 있 었다. 타나카가 화려한 네온사인 거리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이 전기옷은 기술 발전이 가져 온 전후 근대화의 환희와 폭발적인 도시 에너지의 분출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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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화려함의 이면에는 전후 일본인들의 깊은 공포가 숨어 있다. 〈전기옷〉은 시 각적으로 아름답지만 실제로는 작가의 생명을 위협할 만큼 위험한 오브제였다. 수백 개의 전 구와 형광등, 전선으로 이루어진 옷의 무게는 약 50kg에 달해 입는 것조차 버거웠으며 전원 을 켜는 순간 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또한 전선 하나만 합선되어도 작가가 즉사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천만한 상태였다. 작가 자신이 이러한 전기옷을 직접 몸에 입고 점멸시키는 퍼포먼스를 행한 것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를 겪은 지 불과 10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당시 일본 사회의 핵(원폭)에 대한 집단적 트라우마와도 맞닿아 있다. 
작가가 밝힌 일차적인 영감은 오사카 거리의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과 약재상 거리의 제약회 사 광고판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제작된 1956년의 시대적 맥락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불과 11년이 지난 시점이었을 뿐만 아니라, 작 품 제작 직전인 1954년에는 ‘제5후쿠류마루(第五福竜丸)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고는 미국의 비키니섬 수소폭탄 실험으로 인해 일본 어선이 방사능 낙진 피해를 입고 선원이 사망한 사건 으로 당시 일본 사회는 전후 최대의 핵 공포와 반핵 운동으로 들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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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에서 거대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전기 장치를 온몸에 휘감은 예술가의 모습은 당 시 일본 대중과 지식인들에게 단순한 ‘화려한 불빛’을 넘어 가공할 핵에너지와 방사능에 노출 된 인간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연상시켰다. 화려하게 빛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거대한 에너지 시스템 속에 놓인 인간의 신체는 기술 발전이 가져온 풍요와 그 이면에 자리한 파멸의 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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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카 아츠코가 이 눈부시고 위험한 빛의 장치 속에 자신의 나체(신체)를 직접 개입시켰다 는 점이 주목할 만한데 이는 통제 불가능한 기술적 에너지(핵·전쟁) 앞에 노출된 인간 존재의 불안과 취약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 큐레이터 폴 쉬멜 (Paul Schimmel, 1954-) 역시 이 작품이 지닌 위험천만한 물질성이 전후 일본이 겪은 파괴 적 에너지의 기억을 자극한다고 보았다. 그가 “구타이의 모든 작업 중에서도 이 전기옷 만큼 풍부한 은유로 가득 찬 작품은 없다”고 평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이 전 세계 미술 계에서 높이 평가받는 것은 미술에 접목된 테크놀로지뿐만 아니라, 1950년대 전후 일본 사회 가 마주했던 ‘전쟁의 폐허와 눈부신 재건’, ‘기술이 주는 풍요와 원폭이 남긴 파멸의 공포’라 는 시대적 모순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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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카 아츠코의 〈벨〉과 〈전식인형-전기옷〉은 단순히 새로운 재료와 기술을 활용한 실험적 작품에 그치지 않는다. 두 작품은 전후 일본 사회가 경험한 급격한 산업화와 기술 발전, 민주 주의의 확산 그리고 전쟁과 핵에 대한 불안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벨〉이 관객 참여를 통해 새로운 사회적 주체의 탄생을 보여주었다면, 〈전식인형-전기 옷〉은 기술이 제공하는 풍요와 그 이면의 위험성을 작가의 신체를 통해 드러냈다. 이처럼 작 가는 전기, 소리, 신체와 같은 비전통적 매체를 활용하여 전후 일본 사회의 복합적인 현실을 시각화하였으며 이는 전후 일본의 동시대성을 효과적으로 담아낸 행위라고 생각한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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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나연, 「구타이미술(具体美術)과 일본 전후(戰後) 모더니티의 경험」, 『미술사학』 25, 2011. 

박세연, 「일본만국박람회(1970)와 전위예술」, 『미술이론과 현장』 제 24호, 2017. 
조채옥, 「구타이 미술협회 초기의 특성 –전 ‘제로그룹(0會)’을 중심으로–」, 『기초조형학연구』 22(4), 2021. 
이은주, 「1950-1970년대 도쿄화랑 전시 아카이브 연구: 일본현대미술 담론 형성을 중심으 로」, 『현대미술사연구』 5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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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d5f.org/ (都立第五福竜丸展示館 홈페이지)
https://www.shinseisaku.net/wp (新製作協會 홈페이지) 
https://www.whitestone-gallery.com/ko (Whitestone Gallery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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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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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다나카 아츠코가 1955년 교토에서 열린 제3회 겐비 전시회에서 작품(종)을 설치하는 모습.
©Kanayama Akira and Tanaka Atsuko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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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다나카 아츠코,  덴키후쿠 (전기 드레스) 착용, 1956년, '제2회 구타이 미술전', 오하라 홀, 도 쿄. 
©Kanayama Akira and Tanaka Atsuko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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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Atsuko Tanaka”, Moderna Museet in Stockholm, 2019 Photo: Åsa Lundén/Moderna Museet.
https://www.modernamuseet.se/en/stockholm/exhibitions/atsuko-tana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