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이전글 다음글
3부. 혼성적 존재들: 아니카 이의 기술과 생명 네트워크
주경은_노트(KNOT:) 에디터
본 글은 2025년 제출된 석사학위논문 「아니카 이(Anicka Yi) 예술작품에 나타난 혼성성 연구: 행위자-연결망 이론의 번역 개념을 중심으로」를 편집하여 작성된 글로, 총 3부로 작성되었습니다. 



앞서 1부와 2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니카 이는 근대적 이분법에 기반한 사고로부터 야기되는 문제에 주목하여,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허물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이어왔다.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그녀는 기술적 존재와의 관계에 관한 탐구를 진행하며 기계와의 혼성화를 작품의 전면에 드러낸다. 

아니카 이가 2019년 ≪우리는 결코 개인적이지 않다 We Have Never Been Individual≫(2019)에서 선보인 ≪생물 반응기 Bioreactors≫(2019) 연작의 두 작품 < 홀로바이온트 Holobiont >(2019)와 < 박테리아 시대에서의 삶과 죽음 Living and Dying In The Bacteriacene >(2019)은 미생물의 성장과 변화를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는 수조 형태의 작업물이다. 이 수조 안에는 미세조류(Microalgae)와 남세균(Cyanobacteria)이 배양되었으며, 작가는 곤충 알과 현대 도시를 추상화한 아크릴 강모, 도금 철, 3D 프린터 기반 인공 구조물들을 함께 배치하였다. 각 구조물의 표면에는 박테리아 배양액이 도포되었다. 작품이 설치된 후 일정 시간이 흐르면 수조 내에 내장된 배양 시스템을 통해 미세조류가 남세균에 반응하며 생물학적 변화가 일어난다.
KakaoTalk_Photo_2025-10-01-15-19-16_005.jpeg
< Living and Dying In The Bacteriacene >, 2019
KakaoTalk_Photo_2025-10-01-15-19-16_004.jpeg
< Holobiont >, 2019
이러한 작품의 특징에 관해 아니카 이는 “자연적 공생과 인공적 물질 간의 공생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었음을 강조하며, “자연, 기술, 생물학의 융합을 의도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전시 제목인 ≪우리는 결코 개인적이지 않다≫는 발생생물학자이자 과학자 스콧 길버트(Scott Gilbert, 1949- )의 논문 “삶에 대한 공생적 관점: 우리는 결코 개인적이지 않다 A Symbiotic View of Life: We Have Never Been Individual”(2012)와 동명이며 내용상으로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니카 이는 그간 주요 작품에서 남세균과 함께 미세조류를 빈번하게 활용해 왔다. 이들은 해수 및 담수 생태계에서 광합성하여 산소를 생성하고, 지구 대기 및 호기성 생명의 기반을 조성하는 존재이다. 길버트는 이러한 조류-남세균의 세포 내 공생 관계를 진화적 상징의 사례로 제시하며, 세균이 광합성 세포 내부로 통합되어 엽록체로 진화해 온 과정을 설명하였다. 이 과정은 인간의 경우에도 적용해 볼 수 있는데, 실제로 인간의 장내에는 150종 이상의 박테리아가 서식하고 1000개 이상의 박테리아 그룹이 존재한다.

더불어 작품의 제목인 ‘홀로바이온트’는 숙주와 공존하는 미생물 총체를 단일한 생물학적 단위로 파악하는 용어로 생태-진화-발생생물학(Ecological Developmental Biology) 분야에서 발달 및 진화시스템을 개념화하는 데 새로운 통찰을 가져다준 주요 개념이다. 러시아 식물학자 콘스탄틴 메레슈코프스키(Konstantin Mereschkowski, 1855-1921)는 1905년 공생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진핵세포가 단세포 원핵생물과의 공생을 통해 진화했다는 ‘내생 공생(Endosymbiosis)’ 이론을 주장하였다. 이후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 1938-2011)가 이 이론을 ‘공생복합체(Symbiotic consortium)’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공생복합체는 서로 다른 생물이 보다 넓은 시스템 내에서 상호작용하며 공동으로 기능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즉, 개별 생물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전체적으로 하나의 생명체처럼 작용하는 것이다. 홀로바이온트는 공생복합체의 한 예로 우리 몸속의 미생물들이 우리의 신체를 숙주로 삼아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며 진화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이전의 생물학자들은 개별주체 개념에 기초하여 생물학적 틀을 구성하였으며, 기존의 해부학적, 생리적, 발달적 기준은 오로지 개체의 관점에서만 고려되었다. 그러나 홀로바이온트 개념은 하나의 생명체를 규정할 때 그 개체와 공생하는 다른 생명체를 함께 고려하는 접근법이다. 이에 관해 아니카 이는 “인간은 항상 박테리아, 균류, 바이러스와 함께 공존”하고 있으며, “우리는 모두 공생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한편, 아니카 이는 작품에 자연적 요소와 인공물을 병치함으로써 자연적 요소가 단순히 자연 일부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목적에 따라 식량이나 에너지원으로 활용된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는 인간, 기술, 자연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들 영역의 경계가 모호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그녀는 생명체의 진화와 공생에 관한 자신의 관점을 시각화함으로써 관람자가 인간이라는 개체의 주체성과 전통적 인식을 재고하게 하며, 나아가 인공물과의 관계까지 고려하게 한다. 

이처럼 작품 내의 미세조류와 남세균은 생물학적 행위자로서 ‘계간 협력’의 특성을 드러내며 기술적 장치와 복합적 관계를 맺는다. 아니카 이는 ≪생물 반응기≫를 통해 생명체의 정체성과 경계가 고정된 속성이 아닌 다양한 행위자 간의 관계 속에서 구성된다는 점을 드러낸다. 나아가 이는 ‘무엇이 개체를 구분 짓는 기준이 될 수 있는가’를 되묻는 비판적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에스더쉬퍼 갤러리(Esther Schipper Gallery)에서 개최된 ≪양자 폼을 통한 반짝임 A Shimmer Through The Quantum Foam≫(2023)에서 처음 선보인 ≪방산충 Radiolaria≫(2023)은 아니카 이가 구축한 인간-비인간-기계의 관계망이 가장 복합적이고 확장된 형태로 드러나는 작업이다. ≪방산충≫은 총 5개의 작품으로 구성된 연작으로, 아니카 이는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인 ‘방산충(Radioraria)’의 생태학적 특징을 참조하여 작품을 제작하였다. 방산충은 규산질로 이루어진 정교한 골격을 지닌 단세포 해양 원생생물로 주로 해양 표층에 부유하며 살아간다. 이들이 죽은 뒤 남긴 퇴적물은 해저에 침전되어 퇴적층을 형성하며 산소 생산에 기여하기 때문에 지구의 허파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이에 더하여, 그녀는 인공물인 PMMA 광섬유, 모터, LED를 사용해 작품을 천장에 매달린 형태로 전시하고, 땋아 놓은 광섬유를 따라 발산되는 빛의 움직임을 구현한다. 광섬유를 통해 흐르는 빛의 파동은 마치 생명체가 호흡하듯 일정한 리듬을 형성한다.

한편, ≪방산충≫은 2024년 리움미술관에서의 개인전 ≪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에서도 소개되었으며, 이전의 ≪양자 폼을 통한 반짝임≫ 전시와 마찬가지로 ≪양자 포말 회화 Kñ†M£M≫(2023-2024) 연작과 함께 전시되었다. ≪양자 포말 회화≫는 아크릴 판 위에 UV 프린트로 제작된 17점의 평면 작품이다. 작품의 디스플레이에는 문어나 오징어를 연상케 하는 형태들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이는 작가가 알고리즘과 대화하며 만들어낸 이미지이다. 아니카 이는 이러한 창작 과정을 “생명체와 무생물을 다른 생태적 존재와 혼성화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이는 알고리즘이 생명체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생명과 비생명, 유기체와 기술이 서로 얽혀 새로운 존재의 발생을 도모하는 실천으로 작동함을 의미한다.
KakaoTalk_Photo_2025-10-01-15-19-16_003.jpeg
< Dewdrop Continuum >, 2023
KakaoTalk_Photo_2025-10-01-15-19-16_002.jpeg
< Galvanic Quartz >, 2023
KakaoTalk_Photo_2025-10-01-15-19-15_001.jpeg
W†R§ñK >, 2023
이와 같은 관점은 ≪방산충≫과 ≪양자 포말 회화≫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촉수’의 형상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촉수는 문어나 해파리, 말미잘과 같은 생물의 몸에서 뻗어 나온 길고 유연한 구조물을 말하며 주변 환경을 감지하거나 먹이를 포획하기 위해 사용하는 감각기관이다. ≪방산충≫에서 작가는 강철과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촉수를 기계적 움직임으로 구현하고 모터 소리와 함께 촉수가 말렸다 펴지기를 반복하는 형식으로 감각 능력을 지닌 기계 생명체의 형상을 제시한다. 촉수는 다양한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어 주위 환경을 탐색하고 변화에 반응한다. 그리고 이 기능을 통해 먹이나 물리적 접촉, 온도 변화를 감지한다. 따라서 작품 속 기계 촉수는 환경적 신호를 감지하고 반응하는 생명체의 특성과 기계의 인공 시스템의 특성을 함께 지닌다. 작품의 촉수는 생태적이고 기술적인 네트워크를 매개하는 접촉 지점으로 기능한다. 이는 결국 아니카 이가 ‘감각 하는 기계 생명체’를 구체화하는 하나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아니카 이는 ≪방산충≫을 ‘생물학-기술 생명체(Bio-Techno Lifeforms)’로 명명하며 “세상에 관해 배울 수 있는 생명체”라고 설명한다. 이는 그녀가 이전 작품들에서 꾸준히 탐구해 온 개념들을 관람자에게 구체적 형태로 제시하려는 시도다. 그녀는 과학기술을 통한 진보가 인간 존재와 삶의 조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지속해서 사유해 왔으며 특히, 인공지능의 발전과 기계의 감각화 가능성에 주목한다. 더불어 아니카 이는 머지않아 감각 기능을 갖춘 기계가 등장할 것이라 예견하며, “기계를 인간과 단순히 유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서로의 존재 방식을 조율하며 함께 진화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작품들은 아니카 이가 ‘감각의 생명정치(Biopolitics Of The Senses)’라 부르는 실천을 실행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작동한다. ‘생명정치(Biopolitics)’는 철학자 미셸 푸코(Paul-Michel Foucault, 1926-1984)가 제시한 개념으로 생명을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권력의 한 양상이다. 아니카 이는 푸코의 ‘생명정치’를 차용하여 자신의 작업을 ‘감각의 생명정치’라 명명한다. 이는 단지 인간 생명의 관리와 통제를 넘어 감각적 지각과 감응의 영역까지도 기술과 알고리즘에 의해 재구성되고 있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그녀는 작품을 통해 존재들이 서로의 감각 체계를 공유하거나 간섭하는 새로운 생명 정치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따라서 ‘감각의 생명정치’란 인간의 감각 경험조차도 더 이상 인간 고유의 것이 아닐 수 있으며, 인공지능과 비유기적 시스템과 같은 비인간과의 혼성을 통해 주체성 자체가 재구성되고 있다는 비판적 사유를 지시한다. 

이처럼 아니카 이는 ≪방산충≫을 통해 타자와의 소통이 가능한 기계 생명체의 형상을 제시함으로 감각을 중심으로 기계적 실체와 생명체가 교류하는 새로운 방식을 탐색한다. 이는 유기적 생명체와 인공지능과 같은 무생물 사이의 소통 채널을 구성하려는 시도이며 기계의 생물화를 통해 기존의 존재론적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의지이기도 하다. 그녀는 유기체와 인공물, 과학적 현실과 상상적 허구, 자연과 기술의 특성이 다층적으로 연결된 작품을 통해 기술을 생명의 또 다른 진화적 맥락으로 사유하고자 한다.

≪방산충≫은 방산충이라는 생태적 존재를 중심으로 행위자 간의 협력을 통해 생물 다양성, 생태순환과 같은 동시대의 복잡한 문제들을 환기시킨다. 아니카 이는 이종 행위자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네트워크를 전시 공간으로 확장하였다. 이는 보이지 않는 생태적 순환과 비가시적 존재들의 작용을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함으로써 관람자를 그 관계망의 일부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녀의 작업은 생명체 간의 공생적 얽힘을 중시하는 관점을 통해 관람자가 자연과 문화, 생물과 기술의 지속 가능한 연속성에 대해 숙고하도록 유도한다.


아니카 이는 최신 기술과 생태학적 통찰을 결합하여 생명에 대한 기존의 개념을 벗어난 새로운 존재론적 사유를 요청한다. 그녀의 작업에서 기술은 더 이상 중립적 도구가 아니라 생태계의 감각적이고 정치적인 행위자로 기능하며 존재들이 구성하는 복잡한 연결망 속에서 실재를 재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작가는 생태적 관계의 재구성을 통해 동시대의 관계망을 보다 복합적이고 유동적인 체계로 사유하게 만들며, 기존의 경계를 넘어서 새로운 존재 방식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아니카 이의 작업은 근대적 이원론에 기반한 위계 구조, 기술과 생명의 경계에서 비롯된 존재론적 불확실성과 같은 다양한 문제를 복합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초래하는 복잡한 현상들은 작품 내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녀는 작품을 통해 동시대의 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 방식의 필요성을 제안하고 있다. 관람자는 작품을 통해 생물학적 다양성과 비가시적 존재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러한 경험은 변화와 협력의 관점에서 오늘날의 문제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