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카 이는 독일의 프리드리치아눔(Fridericianum)에서 열린 ≪정글스트라이프 Jungle Stripe≫(2016)에서 ≪버섯 케이지≫를 처음 선보였으며, 이후 ≪메타스포어Metaspore≫(2022)를 통해 이 작품을 다시 전시하였다. ≪메타스포어≫의 기획자 피암메타 그리치올리(Fiammetta Griccioli)는 이 작품에 관해 작가가 “내용물과 용기, 동물과 식물 같은 사전적으로 고정된 이분법적 범주를 개념적으로 전복하며 종 차별주의에 비판을 드러낸다.”고 평가하였다.
이는 ≪정글스트라이프≫의 주제였던 ‘혼종’의 개념과도 연결된다. 아니카 이는 ‘혼종’이란 단어의 기원이 라틴어 혼종(Hybrida)과 그리스어 교만, 오만(Hybris)이라는 두 가지 출처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작가는 ≪정글스트라이프≫를 자연의 요소들을 식민주의적 오만과 충돌시키고자 기획한 전시라 언급한 바 있다. ≪버섯 케이지≫에서 동물, 식물, 기계라는 상이한 존재는 하나의 환경 안에 뒤얽혀 있다. 그녀는 작품을 통해 고정된 이분법적 범주를 비판하고, 식민주의적 오만에서 비롯된 분류 체계에 관한 성찰을 시도한다.
한편, ≪정글스트라이프≫에서 작가는 관람객들에게 브라질의 인류학자 에두아르도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Eduardo Viveiros de Castro, 1951- )의 “역사와 인류학에서 종의 개념 The Notion of Species in History and Anthropology”(2014)을 인쇄해 제공하였다. 이는 그녀의 작업이 보다 급진적인 존재론적 사유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해당 논문에서 카스트로는 아메리카 선주민의 사유를 바탕으로 정립한 ‘관점주의(Perspectivism)’를 통해 모든 존재는 고유한 관점을 지닌 주체로, 각 존재의 신체적 조건에 따라 세계는 다르게 인식되고 구성된다고 말한다. 카스트로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하나의 보편적 자연을 공유하며, 문화는 그 자연을 해석하는 다양한 방식이다. 즉, 존재들 사이의 차이는 같은 현실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데서 비롯된다. 반면, 관점주의는 그 반대의 논리를 취한다. 해당 논의에서 존재는 각각 자신만의 신체적 특수성에 따라 서로 다른 세계를 구성한다. 가령, 인간과 벌새는 모두 꽃의 꿀을 섭취하지만, 인간에게 꿀은 그저 달콤한 액체일 뿐이나 벌새에게는 삶을 유지하는 주식으로, 그 중요성이 달리 인식된다. 다시 말해, 인간과 벌새는 같은 대상을 접하고 유사한 행위를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나, 각 존재가 지닌 관점에 따라 그 의미나 중요성은 다를 수 있다. 즉, 지각되는 객체는 같더라도 그 객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구성되는지는 전적으로 각 존재의 신체적 관점에 따라 다르다.
이러한 시각에서 카스트로는 ‘종’을 단순히 생물학적 범주가 아닌,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고 질서화하기 위해 발명한 인식론적 도구이자 문화적 분류의 산물이라고 본다. 따라서 그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분리하는 이분법이 식민주의적 폭력의 기저를 이루었음을 지적하며, ‘종’ 개념이 생명의 다양성을 보존하거나 설명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억압적 분류 체계로 환원해왔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그는 "종간 구분을 넘어서려는 시도조차도 인간중심주의의 한계 안에 갇혀 있다."고 지적함으로써 존재론적 분류 체계의 자기모순성과 폐쇄성을 비판한다. 따라서 존재들이 가진 본질적 경계는 절대적이지 않으며 각자의 관점에 따라 유동적이고 상대적으로 변형된다. 이에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는 서로의 시점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새로운 존재로 변화하거나 융합되는 혼종화의 가능성을 지닌다.
아니카 이가 전시 스크립트를 통해 카스트로의 논문을 관람객에게 제공한 것은 감각적 예술 경험 가운데 불안정하고 허구적인 인간중심의 경계를 보여주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녀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비고정적·다중적 존재는 카스트로가 말하는 선주민의 세계관과 공명한다. ≪버섯 케이지≫는 버섯, 인조 모피, 실험실 장비, 기계 회로와 같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합된 작품이다. 아니카 이는 이 작품을 통해 고정된 종 분류의 위계와 경계를 해체하고 서로 다른 존재의 얽힘을 조형적으로 구현하였다. 이러한 작품의 존재론적 혼성화는 이후 전개되는 작가의 작업에서도 끊임없이 확장된다. 아니카 이는 기계를 생물학적 진화와 연속된 흐름 속에 위치시키며, 자연물과 인공물이 결합된 혼성적 생명체를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