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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경계를 넘는 생명: 아니카 이의 생태적 사유
주경은_노트(KNOT:) 에디터
본 글은 2025년 제출된 석사학위논문 「아니카 이(Anicka Yi) 예술작품에 나타난 혼성성 연구: 행위자-연결망 이론의 번역 개념을 중심으로」를 편집하여 작성된 글로, 총 3부로 작성되었습니다.



아니카 이는 작업을 시작한 이래로 모든 생명체의 기원에 해당하는 미생물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왔다. 미생물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생명체이자 모든 생물과 관계를 맺는 존재로, 환경에 따라 형태가 변화하는 특성을 지닌다. 미생물의 한 분류인 바이러스나 세균은 인간에게 감염을 일으키는 해로운 존재로 인식되지만, 생물학적 환경에서 일부 미생물은 인간의 생존과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 공생자로 작용한다. 대표적으로 인간의 장내 림프 조직과 같은 면역 기관은 특정 공생 세균과의 협력을 통해서만 정상적으로 발달하며, 미생물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면역 체계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관련해 아니카 이는 “자연의 바깥이나 진화의 바깥은 없다.”고 언급하면서 생명이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는 변이와 돌연변이를 거치는 존재”라 언급한 바 있다. 이는 생명을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소멸과 생성, 감염과 진화를 반복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따라서 작품 속 미생물은 단순한 미시적 생명체가 아니라, 생명체의 지속적 변화를 증언하는 생태적 존재로 자리 잡게 된다. 



대안공간 더 키친(The Kitchen)에서 열린 ≪나를 F라고 불러줘 You Can Call Me F≫(2015)를 기점으로 작가는 비전형적인 감각 매체를 활용해 인간 중심적 분류 체계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사회적·문화적 경계의 유동성과 혼성화 가능성을 탐구한다. 2017년 구겐하임 미술관(The Guggenheim Museum)에서 열린 ≪생명은 값싸다 Life is Cheap≫(2017)에서 전시된 < 불가항력 Force Majeure >(2017)은 자연물과 인공물의 결합과 예측 불가능한 변이 과정을 노출하는 작품으로, 생명을 정태적 실체가 아닌 유동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과정으로 인식하는 작가의 관점이 드러난다. < 불가항력 >은 금속 지지대 위에 벌집 형태의 구조물이 늘어진 형태로 설치되어 있으며, 표면에는 박테리아가 배양되어 있다. 구조물의 내부에는 은은한 빛을 내는 조명과 함께 디지털시계가 삽입되어 시간성과 생명성의 문제를 환기시킨다. 또한, 배경에는 한천으로 코팅된 타일이 부착되어 있으며, 그 위에 배양된 박테리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채로운 색의 유기적 패턴을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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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rce Majeure >, 2017
아니카 이는 미생물을 단지 인간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타자가 아니라, 공진화(Co-Evolution)의 동반자로서 작품에 배치한다. 이는 자연 질서에 대한 인간의 통제 불가능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자연과 인간이 상호의존적 관계로 얽혀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작가의 관점은 페미니즘 사상가이자 문화비평가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 1944- )의 '부식토성(Humusities)'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해러웨이는 기존의 인본주의적 ‘인간성(Humanity)’ 개념이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문화, 생명과 기술의 간의 유기적 관계를 단절시키는 한계를 지닌다고 비판하면서 ‘인간성’의 대안으로 ‘부식토성’을 제안한다.

부식토성은 단순한 생물학적 분해 과정이 아닌 모든 존재가 끊임없이 뒤섞이고 분해되며 함께 진화하는 상호의존적이고 생태적인 존재 방식이다. 따라서 해러웨이에게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독립적이거나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지속해서 부패하고 변화하는 ‘퇴비(Compost)’와 같은 존재다. 여기서 ‘퇴비’는 경계가 흐려지는 세계 속에서 생명체 간의 얽힘, 감염, 혼종을 인정하는 윤리적·존재론적 자세로 제시된다. 해러웨이는 인간을 다른 생명체와 대등하게 상호작용하는 복합적 생태계의 일원이자 ‘세계 만들기(Worlding)’의 과정을 함께 수행하는 존재로 재정의한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아니카 이의 < 불가항력 >은 부식토성의 시각적 구현으로 읽을 수 있다. 작품 전체를 뒤덮은 박테리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썩어가고 부패하며 생명의 유한성과 소멸의 필연성을 드러낸다. 더불어 내부에 삽입된 디지털시계는 관람자가 이 변화의 과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게 만들어, 그것이 종말이 아닌 다음 생명을 위한 비옥한 기반임을 상기시킨다. 이처럼 작가는 미생물의 썩어가는 과정과 시계를 통해 생명이란 본질적으로 한정된 시간 속에 놓여 있는 것이자 상실과 부패의 과정을 거쳐 변화하고 진화하는 것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아니카 이는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들의 예측 불가능한 변이 과정을 시각화함으로써 ‘생명’이 고정된 본질이 아닌 끊임없는 변화의 연속임을 드러낸다. 생명체 간의 연속성과 진화적 변이를 강조하는 작가의 관점은 이후 종과 종 사이의 경계 자체를 해체하려는 시도로 나아간다. ≪버섯 케이지 Mushroom Cages≫(2016)는 < 종과 종이 만날 때 파트 1(빛나거나 미치거나) When Species Meet Part 1(Shine Or Go Crazy) >(2016), < 종과 종이 만날 때 파트 2(식물심리학) When Species Meet Part 2(Vegetable Psychology) >(2016), < 종과 종이 만날 때 파트 3(착생) When Species Meet Part 3(Sessile) >(2016)으로 구성된 연작이다. 파트 1은 기계 장치의 회로망을 연상시키는 그물망 구조의 조형물을 지칭하며, 모조진주와 자갈로 감싼 원형 지지대 위에 대나무 버섯의 형태를 본뜬 모양이다. 파트 3는 외부가 인조 모피로 덮인 약 2m 너비의 케이지로, 가장자리에 실험실 장비가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작가는 파트 1과 파트 3를 아울러 파트 2라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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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en Species Meet Part 2(Vegetable Psychology)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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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en Species Meet Part 3(Sessile)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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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en Species Meet Part 1(Shine Or Go Crazy) >, 2016
아니카 이는 독일의 프리드리치아눔(Fridericianum)에서 열린 ≪정글스트라이프 Jungle Stripe≫(2016)에서 ≪버섯 케이지≫를 처음 선보였으며, 이후 ≪메타스포어Metaspore≫(2022)를 통해 이 작품을 다시 전시하였다. ≪메타스포어≫의 기획자 피암메타 그리치올리(Fiammetta Griccioli)는 이 작품에 관해 작가가 “내용물과 용기, 동물과 식물 같은 사전적으로 고정된 이분법적 범주를 개념적으로 전복하며 종 차별주의에 비판을 드러낸다.”고 평가하였다.

이는 ≪정글스트라이프≫의 주제였던 ‘혼종’의 개념과도 연결된다. 아니카 이는 ‘혼종’이란 단어의 기원이 라틴어 혼종(Hybrida)과 그리스어 교만, 오만(Hybris)이라는 두 가지 출처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작가는 ≪정글스트라이프≫를 자연의 요소들을 식민주의적 오만과 충돌시키고자 기획한 전시라 언급한 바 있다. ≪버섯 케이지≫에서 동물, 식물, 기계라는 상이한 존재는 하나의 환경 안에 뒤얽혀 있다. 그녀는 작품을 통해 고정된 이분법적 범주를 비판하고, 식민주의적 오만에서 비롯된 분류 체계에 관한 성찰을 시도한다.

한편, ≪정글스트라이프≫에서 작가는 관람객들에게 브라질의 인류학자 에두아르도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Eduardo Viveiros de Castro, 1951- )의 “역사와 인류학에서 종의 개념 The Notion of Species in History and Anthropology”(2014)을 인쇄해 제공하였다. 이는 그녀의 작업이 보다 급진적인 존재론적 사유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해당 논문에서 카스트로는 아메리카 선주민의 사유를 바탕으로 정립한 ‘관점주의(Perspectivism)’를 통해 모든 존재는 고유한 관점을 지닌 주체로, 각 존재의 신체적 조건에 따라 세계는 다르게 인식되고 구성된다고 말한다. 카스트로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하나의 보편적 자연을 공유하며, 문화는 그 자연을 해석하는 다양한 방식이다. 즉, 존재들 사이의 차이는 같은 현실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데서 비롯된다. 반면, 관점주의는 그 반대의 논리를 취한다. 해당 논의에서 존재는 각각 자신만의 신체적 특수성에 따라 서로 다른 세계를 구성한다. 가령, 인간과 벌새는 모두 꽃의 꿀을 섭취하지만, 인간에게 꿀은 그저 달콤한 액체일 뿐이나 벌새에게는 삶을 유지하는 주식으로, 그 중요성이 달리 인식된다. 다시 말해, 인간과 벌새는 같은 대상을 접하고 유사한 행위를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나, 각 존재가 지닌 관점에 따라 그 의미나 중요성은 다를 수 있다. 즉, 지각되는 객체는 같더라도 그 객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구성되는지는 전적으로 각 존재의 신체적 관점에 따라 다르다.

이러한 시각에서 카스트로는 ‘종’을 단순히 생물학적 범주가 아닌,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고 질서화하기 위해 발명한 인식론적 도구이자 문화적 분류의 산물이라고 본다. 따라서 그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분리하는 이분법이 식민주의적 폭력의 기저를 이루었음을 지적하며, ‘종’ 개념이 생명의 다양성을 보존하거나 설명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억압적 분류 체계로 환원해왔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그는 "종간 구분을 넘어서려는 시도조차도 인간중심주의의 한계 안에 갇혀 있다."고 지적함으로써 존재론적 분류 체계의 자기모순성과 폐쇄성을 비판한다. 따라서 존재들이 가진 본질적 경계는 절대적이지 않으며 각자의 관점에 따라 유동적이고 상대적으로 변형된다. 이에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는 서로의 시점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새로운 존재로 변화하거나 융합되는 혼종화의 가능성을 지닌다. 

아니카 이가 전시 스크립트를 통해 카스트로의 논문을 관람객에게 제공한 것은 감각적 예술 경험 가운데 불안정하고 허구적인 인간중심의 경계를 보여주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녀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비고정적·다중적 존재는 카스트로가 말하는 선주민의 세계관과 공명한다. ≪버섯 케이지≫는 버섯, 인조 모피, 실험실 장비, 기계 회로와 같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합된 작품이다. 아니카 이는 이 작품을 통해 고정된 종 분류의 위계와 경계를 해체하고 서로 다른 존재의 얽힘을 조형적으로 구현하였다. 이러한 작품의 존재론적 혼성화는 이후 전개되는 작가의 작업에서도 끊임없이 확장된다. 아니카 이는 기계를 생물학적 진화와 연속된 흐름 속에 위치시키며, 자연물과 인공물이 결합된 혼성적 생명체를 제시한다.
이미지 출처

아니카 이 홈페이지  https://www.anickayistudio.bi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