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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아니카 이: 냄새, 경계, 타자의 예술
주경은_노트(KNOT:) 에디터
본 글은 2025년 제출된 석사학위논문 「아니카 이(Anicka Yi) 예술작품에 나타난 혼성성 연구: 행위자-연결망 이론의 번역 개념을 중심으로」를 편집하여 작성된 글로, 총 3부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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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생물학과 인공지능을 포함한 과학기술의 급진적 발전은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의 범주와 위계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과거로부터 중시됐던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탈피하여 복합적이며 대칭적인 관계로 세계를 인식할 것을 요구한다. 포스트 휴머니즘 이론가인 케서린 헤일즈(Katherine Hayles, 1943- )는 인간이란 태어나기 전부터 어느 정도 기술과 결합되어 살아가는 존재로 “이질적 요소들(Heterogeneous Components)의 집합체이자 혼합물로 그 경계가 끊임없이 구성되고 재구성되는 물질-정보적 개체들”이라 언급한 바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인간은 더 이상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기술과 환경, 사회적 요소들이 얽혀 있는 흐름 속에서 새롭게 구성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시대적 배경 아래 예술계에서는 기술과 생명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실험적 작업이 활발히 등장하고 있다. 동시대의 예술가들은 생체 데이터, 인공지능, 감각적 인터페이스와 같은 기술을 매개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횡단하는 시도를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시도들은 기술과 생명의 관계를 탐색하는 동시에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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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카 이(Anicka Yi, 1971- )는 감각·기술·비인간 존재를 매개로 인간 중심적 사고에 도전하는 대표적인 예술가로 부상하고 있다. 그녀는 2017년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에서의 개인전 ≪생명은 값싸다 Life is Cheap≫(2017)를 통해 휴고 보스상(Hugo Boss Prize)을 수상하면서 국제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한, 리움미술관의 개인전 ≪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2024)를 통해 국내에서도 소개되며 한국 미술계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니카 이의 작업은 근대적 이원론에 기반한 위계 구조, 기술과 생명의 경계에서 비롯된 존재론적 불확실성과 같은 다양한 문제를 복합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초래하는 복잡한 현상들은 작품 내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녀는 작품을 통해 동시대의 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 방식의 필요성을 제안하고 있다.



뉴욕에 위치한 대안공간 더 키친(The Kitchen)에서 열린 개인전 ≪나를 F라고 불러줘 You Can Call Me F≫(2015)는 바이러스나 냄새와 같은 비가시적 매개체가 물리적 경계를 넘어 확산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특히, < 새로운 채소를 움켜쥐고 Grabbing at Newer Vegetables >(2015)는 그녀를 ‘후각을 다루는 작가’로 각인시킨 작품이다. 작품의 제목은 존 애쉬베리(John Ashbery)의 시 「경계 문제 Boundary Issues」(2009)에서 차용한 것으로, 다양한 시각에서의 경계 문제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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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abbing at Newer Vegetables >, 2015
아니카 이는 예술가, 큐레이터, 비평가와 같이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100명의 여성에게 채취한 박테리아 샘플을 기반으로 작품을 구성하였으며, 이 샘플은 한천 배지 위에 배양되어 전시 제목인 ‘You Can Call Me F’라는 문구를 형성한다. 박테리아 배양은 합성 생물학자 MIT 과학자들과 합성 생물학자인 탈 다니노(Tal Danino)의 협업을 통해 이루어졌다. 배양된 박테리아에서 발생한 냄새는 인근 가고시안 갤러리(Gagosian Gallery)에서 몰래 가져온 무취의 공기와 충돌하며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관람자는 일반적으로 냄새가 나지 않는 전시 공간에서 생소한 냄새와 마주하게 되며, 이는 감염에 관한 불안함을 자극한다. 

작가는 해당 작품의 익명화된 박테리아 군집을 통해 여성들 간의 생물학적 연대와 개별적 정체성의 탈인격화를 동시에 시각화한다. 이 같은 방식에 대해 ≪나를 F라고 불러줘≫의 기획자 루미 탄(Lumi Tan)은 “가부장적 사회가 다양한 영역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현실과 ‘바이럴(Virality)’이라는 개념이 욕망과 공포를 동시에 수반하는 오늘날의 모순을 드러낸다.”고 평가한다.

일반적으로 청결함과 무취는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상태로 여겨지며, 불쾌한 냄새는 대개 배제되어야 할 요소로 간주된다. 이는 전시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아니카 이는 냄새를 순수/불결, 내부/외부, 주체/타자와 같은 사회적·문화적 이분법을 가시화하고 전복하는 비판의 도구로 사용한다. 박테리아가 배양된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위생적으로 통제된 미술관이라는 백색의 공간에 놓임으로써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온 감각적 질서에 균열을 가한다.


아니카 이는 예술가, 큐레이터, 비평가와 같이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100명의 여성에게 채취한 박테리아 샘플을 기반으로 작품을 구성하였으며, 이 샘플은 한천 배지 위에 배양되어 전시 제목인 ‘You Can Call Me F’라는 문구를 형성한다. 박테리아 배양은 합성 생물학자 MIT 과학자들과 합성 생물학자인 탈 다니노(Tal Danino)의 협업을 통해 이루어졌다. 배양된 박테리아에서 발생한 냄새는 인근 가고시안 갤러리(Gagosian Gallery)에서 몰래 가져온 무취의 공기와 충돌하며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관람자는 일반적으로 냄새가 나지 않는 전시 공간에서 생소한 냄새와 마주하게 되며, 이는 감염에 관한 불안함을 자극한다. 

작가는 해당 작품의 익명화된 박테리아 군집을 통해 여성들 간의 생물학적 연대와 개별적 정체성의 탈인격화를 동시에 시각화한다. 이 같은 방식에 대해 ≪나를 F라고 불러줘≫의 기획자 루미 탄(Lumi Tan)은 “가부장적 사회가 다양한 영역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현실과 ‘바이럴(Virality)’이라는 개념이 욕망과 공포를 동시에 수반하는 오늘날의 모순을 드러낸다.”고 평가한다.

일반적으로 청결함과 무취는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상태로 여겨지며, 불쾌한 냄새는 대개 배제되어야 할 요소로 간주된다. 이는 전시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아니카 이는 냄새를 순수/불결, 내부/외부, 주체/타자와 같은 사회적·문화적 이분법을 가시화하고 전복하는 비판의 도구로 사용한다. 박테리아가 배양된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위생적으로 통제된 미술관이라는 백색의 공간에 놓임으로써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온 감각적 질서에 균열을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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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migrant Caucus >, 2017
제목의 ‘코커스(Caucus)’는 ‘특정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행동이나 입장을 조율하기 위한 모임’을 뜻하는 정치적 용어로 이분법적 구분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을 뜻한다. 이에 관해 해당 작품이 전시되었던 ≪메타스포어 Metaspore≫(2022)의 기획자 피암메타 그리치올리(Fiammetta Griccioli)는 아니카 이가 “냄새를 통해 아시아계 여성 이주 노동자의 정체성과 그들을 둘러싼 노동 착취, 비가시화된 억압 구조에 대한 정치적 논평을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생명은 값싸다≫ 전시 기획자 수잔 톰슨(Susan Thompson)은 작가가 작품에 후각이라는 감각을 사용하는 것에 관하여, “후각이 단순히 흔하지 않은 매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사회적·문화적으로 의미화된 방식과 권력의 메커니즘을 드러내기 위함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관객이 처음 마주하는 철조망이라는 장치는 공간적·사회적 분리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작품의 냄새는 그 경계를 무력화시킨다. 따라서 작가는 소외된 아시아 이민 여성의 땀 냄새를 통해 사회적 타자화와 정치성을 연결 짓고 후각이라는 감각적 경로를 사용해 이를 사회적 공간에 침투시키고자 한 것이다. 

나아가 모계사회를 이루며 후각을 통해 소통하는 목수개미의 특성에서 냄새를 통해 종간 소통을 재현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유추해 볼 수 있다. 톰슨에 따르면, < 이민자 회의 >의 향기는 관람자에게 '개미-인간적 관점(Ant-Human Perspective)'을 촉진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는 ‘개미의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개미의 지각 방식을 인간이 상상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으로 읽힌다. 아니카 이는 < 이민자 회의 >를 통해 인간 사회의 구조적 차별을 비판하는 것에서 나아가 ‘종간 경계 넘기’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아니카 이는 < 새로운 채소를 움켜쥐고 >와 < 이민자 회의 >에서 후각을 매개로 이민자, 노동자, 곤충, 여성과 같은 주변부 존재와 주류 존재를 교차시키며 기존의 사회·문화적 위계질서에 관한 비판적 의식을 드러낸다. 

아니카 이는 시각 중심의 주류 미술 방법론에서 벗어나 후각이라는 비전형적 감각을 통해 사회적 타자를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후각은 인지적 해석보다 직접적인 신체 반응을 유도하는 매체로 감각 계층에서도 비주류에 속한다. 그러나 작가의 작품에서 후각은 제도화된 위계와 경계를 우회할 수 있는 감각적 통로로 활용되었다. 작품 속 후각은 사회적 구분과 위계에 대한 감각적 재현이자 전복의 수단으로 작동한다.
이미지 출처

아니카 이 홈페이지  https://www.anickayistudio.bi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