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더불어 김미련은 현대미술의 ‘장소성,’ 특히 ‘장소 특정성’의 이슈와 관련된 두 개의 프로젝트 < 이사의 기술 >(2019-현재)과 < 나의 살던 고향은 >(2019)을 전시했다. < 이사의 기술 >은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이 소재한 대구광역시 중구의 ‘동인아파트’ 동네가 2018년 무렵 재개발된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곧장 캠코더와 카메라를 들고 아파트 및 그 주변을 주기적으로 촬영하고, 주민들의 이야기와 인터뷰를 기록해오고 있는 진행형의 다큐멘터리 작업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작가가 자신이 결성한 지역의 아티스트 콜렉티브 ‘로컬포스트’를 중심으로 대구 최초의 시영 ‘동인아파트’의 철거와 재개발을 둘러싼 문제를 다루는 다양한 예술적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는 사실이다.7) < 이사의 기술 >과 이와 관련된 유리 상자의 아카이브 작품들은 로컬포스트의 다양한 구성원들, 즉 미술가, 서예가, 연극인, 르포작가, 인문학자 등이 실로 다양한 프로젝트, 즉 아카이브, 슈프레히콜, 생태인형극, 미디어파사드, 게스트하우스, 르포글방, 정원 가꾸기 등을 진행했음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2전시실 유리 상자에는 작가와 동네 아이들이 함께 먹이나 석고, 지점토 등으로 동인아파트 역사의 흔적인 고양이 발자국, 허물어지는 벽, 벽에 새겨진 이름, 백로의 분비물이 베인 히말라야시다 나무 둥치 등을 탁본한 작업과 동인아파트 8경 엽서를 제작한 작품 등이 진열되어 있다.
한편 슈프레히콜8) < 나의 살던 고향은 >은 작가가 동인아파트 재개발의 문제를 다룬 기획전 ≪동인동인(東仁同人)-linked≫(2019)에서 공연된 작품을 촬영한 영상 작품이다. ≪동인동인≫은 ‘장소-특정성’의 전형적인 전시 프로젝트로서 동인아파트 전시관(2동 37호), 슈프레히콜 < 나의 살던 고향은 >(3동 나선형계단), 생태인형극 < 동인그루터기와 백로 >(3동 7호), 미디어파사드 < 마을이동극장 >(3동 나선형계단외벽), 게스트하우스 < 동인아파트에서 하룻밤 잠자기 >(5동 37호), 르포글방 < 분꽃글방 >(3동 7호)과 < 행복정원 >(5동 앞뜰) 등으로 구성되었다. ‘대구 메가폰 슈르레히콜’은 2019년 결성된 연극단체로서 《동인동인》을 위해 슈프레히콜 < 나의 살던 고향은 >(이현순 극본, 연출)을 창작하여 아파트 3동 앞뜰에서 공연했다. < 나의 살던 고향은 >은 “동인아파트 재개발을 둘러싼 여러 정치적 이슈를, 이를테면, 개발업자(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철거되면 결코 다시는 고향에 돌아올 수 없는 운명의 아파트 주민들의 문제를 다뤘다. 일곱 명의 공연자들이 강렬한 색채 대비를 이루는 블랙 슈트와 핑크 타이즈를 착용하고 커다란 핸드 메가폰을 통해 ‘집은 인권이다!’라고 합창하며 돈의 개발 논리가 어떻게 사회적 약자들의 거주권을 박탈하고, 인간적인 문화와 인근 생태계를 파괴하는지를 서정적이면서도 신랄하게 보여[줌]”으로써”9) 아파트 주민과 시민 관객의 큰 반향을 끌어냈다.
이렇게 볼 때, 김미련은 다큐멘터리 영상작업 < 이사의 기술 >과 슈프레히콜 영상작업 < 나의 살던 고향은 >을 통해 한편 장소-특정성의 전시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실천하고 있었고, 또한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동인동인》 프로젝트의 비판적,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요컨대, 작가는 소위 장소-특정성 프로젝트를 통해 반세기를 일기로 사라질 운명에 처한 동인아파트(1969-2020)의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던져놓은 도시공동체, 젠트리피케이션, 풀뿌리 민주주의 등의 문제를 예술적, 생태학적, 인문학적 관점에서 다루며 주민과 시민에게 용기, 희망,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김미련은 2008년 오랜 독일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이래 개인 미술가로서 국내외에서 동시대 다양한 이슈를 다루는 작품활동을 활발하게 해오면서도, 또한 지역의 아티스트 콜렉티브 ‘로컬포스트’를 주도하며 청도 삼평리 송전탑 반대와 성주 소성리 사드(THAAD) 배치 반대 현장에 들어가 현지 주민들과 장기간 협업적 프로젝트를 실행해왔다. 지난 십 수년간 개인 작업과 콜렉티브 활동을 동시에 수행하며 과로한 탓으로 최근 병마와 싸우고 있는 와중에도 작업과 전시를 지속하고 있는 김미련 작가는 양쪽 활동으로 미술계의 관심이 분산된 탓인지 아니면 고질적인 지역 미술가 소외 탓인지 아마도 한국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저평가된 미술가 중 하나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문화비축기지; https://parks.seoul.go.kr/
김미련; https://www.kimiry.net/